21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에 바짝 다가선 두산 베어스의 김태형 감독.
“솔직히 올해가 더 힘들어요.”
엄살이 아닐까. 개막 이후부터 지금껏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딱 이틀(8월6일, 8월10일). 지금도 2위 엔씨(NC) 다이노스와는 상당한 경기 차가 있다. 그런데도 김태형(49) 두산 베어스 감독은 초보 감독으로 일을 냈던, 즉 팀을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작년보다 “더 힘든 시즌”이라고 했다. “올해 (1위) 순위를 지키기 위한 야구를 하느라 더 어려웠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래서 승률에서 밀려 엔씨에 1위를 내줬을 때는 “오히려 덤덤했다”고 한다. “얼마든지 위를 보고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산은 7일 롯데전을 승리하면서 시즌 80승(44패1무)을 채웠다. 지난 시즌 79승을 넘어선 두산의 한 시즌 최다승으로 1995년 이후 21년 만의 정규리그 우승에도 한걸음 더 다가섰다. 김 감독의 초반 승부수가 통한 결과다. “전력 평준화로 치열한 순위 싸움이 될 것 같다”는 시즌 전망에 경기 초반 승기를 잡으면 다소 무리한다 싶더라도 강하게 밀어붙였다. 시즌 초반 경기 후반 불펜 정재훈의 투입이 잦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승부수가 거의 통해서 지금까지 잘 버틴 것”이라면서 “외국인투수들(더스틴 니퍼트, 마이클 보우덴)이 다 잘해줬고, 정재훈도 의외로 너무 잘 던져줬다”고 평가했다.
작년 두산 외국인투수들(대체선수 포함 3명)이 거둔 총 승수는 고작 13승. 하지만 올해는 니퍼트(19승3패)와 보우덴(14승7패)이 7일까지 33승(10패)을 합작해냈다. 유희관(15승4패), 장원준(14승5패)과 ‘판타스틱 4’ 선발진을 완성하면서 ‘시즌 15승 투수 4명’의 대기록을 바라보고 있다. 김 감독은 “선발진들이 로테이션을 한 차례 정도씩 밖에 거른 것 외에 마운드에서 버텨준 게 정말 크다”고 했다. 작년 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친정팀에 복귀한 정재훈 또한 오른 팔뚝을 다치기 전까지 46경기에 등판해 23홀드(1승5패2세이브)의 성적으로 두산의 강한 ‘허리’로 거듭났다.
김태형 두산 감독(오른쪽)이 올 시즌 반달곰 거포로 등극한 김재환에게 타격 조언을 하는 모습.
김태형 감독이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눈빛’과 ‘기질’이다. 그라운드 위에서 상대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싸울 준비가 돼 있는지를 살펴본다. 선수 시절 포수였던 그의 ‘감’은 대체로 맞다. 김 감독은 “보통 ‘감독이 선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1·2군 전부 합해서 70~80명이 있는데 어떻게 다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나는 선수가 감독을 믿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두산의 공격적인 야구는 이런 김 감독의 성향에서 비롯된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주저하지 않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선수”,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는 선수”, “눈빛이 살아있는 선수”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박건우를 1번타자로 중용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 감독은 “(박)건우는 타석에서 볼카운트에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른다. 가끔 팀배팅이 필요할 때도 초구부터 방망이가 나가서 혼자 속앓이를 하기도 하지만 감독 말 한 마디에 위축될까 절대 내색하지는 않는다”며 웃었다. 박건우는 현재 두산 타자들 중 가장 높은 타율(0.343)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공백을 잊게 하고 있다. 김재환, 오재일도 올 시즌을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하면서 두산에 힘을 보태고 있다.
김태형 두산 감독(오른쪽)이 더그아웃에서 박건우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주축 선수들(8명)이 대거 프리미어12 대표팀에 뽑히면서 후유증도 분명 있었다. 양의지, 김재호, 이현승, 장원준 등이 시즌 내내 크고 작은 통증에 시달렸다. 김태형 감독은 “우승 후유증은 있는 것 같다. 선수단 전체적으로 조금씩 아프다”고 했다. 그는 이어 “초반 승률 7할 이상을 거둘 때 시즌 중 분명 고비가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7월에 온 고비가 너무 길었다. 그때는 선수들한테 ‘편하게 하라’고 주문했는데 나 조차도 표정이 굳어 있었다”면서 “고비를 넘기고 다시 연승을 하면서 선수들 사이에서도 ‘정규리그 우승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지금까지 쉼없이 달려왔다”고 했다. 김 감독은 “야구는 진짜 하루살이”라며 일희일비 했던 올 시즌을 돌아보기도 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이 경기 전 연습 때 배팅 게이지 뒤에서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선수 시절이던 1995년, 두산이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팀의 시즌 마지막 경기(인천)에서 9회말 김경기(태평양 돌핀스)가 친 타구가 우중간 깊은 뜬공으로 아웃이 됐다. 막판까지 1위 다툼이 치열했는데 마지막 경기에서 그렇게 1위 결정이 됐다.” 과연 ‘반달곰 사령탑’으로 첫 정규리그 우승은 언제 결정될까. 김 감독은 “여유 있는 1위라고 절대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18일까지는 정상적인 선발 로테이션으로 가고 추가 편성 일정 때는 선발들을 요긴하게 쓰면서 총력전을 펼치겠다”며 고삐를 바짝 당겼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두산 베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