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왼쪽)이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준플레이오프 4차전 엘지 트윈스와 경기에서 2회초 2사 2·3루 때 서건창의 안타 때 홈을 밟은 이택근을 반겨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은 시즌 말미에 “나도 우리 순위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정규리그 3위. 넥센의 3위는 사실상 기적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넥센은 지난 시즌 뒤 팀 전력이 대거 이탈했다. 팀 에이스 앤디 밴헤켄은 일본으로 이적했고, 팀 4번 타자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주전 외야수 유한준(kt)과 마무리 손승락(롯데)은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어 팀을 떠났다. 여기에 불펜의 두 기둥이었던 한현희와 조상우가 수술대에 올랐다. 팀 기둥뿌리가 왕창 뽑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상 팀 재건이 필요한 상황. 고연봉의 외국인선수를 사올 입장도 못 됐다. 시즌 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넥센을 꼴찌 후보로 점쳤던 이유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은 누구보다 냉철했다. 자신의 팀 사정을 간파하고 ‘빅볼’보다 ‘스몰볼’로 팀 컬러의 변화를 꾀했다. 어차피 팀 내에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타자도 이젠 없었다. 마무리캠프 때부터 선수들에게 ‘빠른 야구’를 주문했다. 넥센의 올 시즌 팀 도루수는 154개(경기당 1.07개)로 전체 1위였다. 그리고 투수를 만들어갔다. 이런 과정에서 신재영, 박주현 등 중고 신인 투수들이 경험을 축적시키면서 선발 역할을 해내기 시작했다. 김상수, 이보근, 김세현을 적시적소에 기용하면서 홀드왕(이보근), 구원왕(김세현)을 배출해냈다. 모두 틈만 나면 데이터를 연구한 염경엽 감독의 작품이었다. “시즌 동안 하루도 편히 자본 적이 없다”는 그였다.
사실 염 감독은 작년 시즌 뒤 사령탑 사퇴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시 이장석 대표이사와 갈등의 골이 깊었다. 하지만 마음을 추슬렀다. 붕괴 직전의 ‘영웅(히어로즈)호’를 등지는 게 자못 비겁하게만 느껴졌다. 남겨질 선수들도 눈에 밟혔다. 그리고, 염감독은 2016시즌을 선수들과 함께 스스로의 말처럼 “악착같이” 버텨냈다. 그 결과물이 정규리그 3위다. 얕은 선수층으로 비록 준플레이오프에서 4위 엘지에 덜미가 잡혔으나 넥센과 염 감독의 2016시즌 여정 자체가 기적, 그 이상이었다.
염경엽 감독은 경기 뒤 “넥센 감독으로서 4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우승하고 싶었지만 역량이 부족해서 구단과 팬들에게 우승을 못 이뤄드린 것 같아서 죄송하다"면서 "개인적으로 2014년에 우승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가장 아쉽다. 실패의 책임은 감독인 나한테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부로 책임을 지고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