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 이정후가 지난달 21일 넥센 홈구장인 고척스카이돔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바람의 손자라는 별칭은 고맙지만 언젠가는 벗어나야죠.”
넥센 히어로즈의 신인 이정후(19). 그의 이름은 아직 ‘바람의 아들’ 이종범(엠비시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아들로 더 익숙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임에도 데뷔 첫해부터 주전으로 활약 중인 이정후를 지난달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났다.
이정후는 “아빠는 평소 야구 이야기는 거의 안 하신다”고 전했다. 스타플레이어를 아버지로 둔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야구선수를 꿈꿨지만 아버지는 반대했다. 늘 비교당하는 중압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의 꿈을 꺾지 못한 아버지는 “야구는 왼손 타자가 유리하다”는 조언 한마디만을 남겼다.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우투좌타 선수가 됐지만, 이후 야구에 대한 기술적인 조언은 물론 야구장 분위기나 에피소드조차도 잘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정후를 지도하는 코치나 감독들의 의견과 혼선을 염려한 것이다.
이정후는 “다른 사람들보다 눈에 띄었겠지만 장점은 야구용품이 풍부했다는 점뿐”이라며 “오히려 많이 양보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코치 선생님들이 학부모들한테 특혜로 비칠까봐 다른 선수들보다 더 엄격하게 대했다”고 말했다.
시즌 전부터 아버지의 이름으로 관심을 받았던 이정후는 최근 자신의 기록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2일 현재 넥센이 올 시즌 치른 43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타격 12위(타율 0.320)와 안타 10위(49안타)에 올라 있다. 특히 득점은 나성범(39득점), 손아섭(33득점)에 이어 3위(32득점)에 올라 그의 빠른 발과 탁월한 주루 센스를 증명하고 있다. 홈런(2개)과 타점(12개) 등 힘은 다소 부족하지만 신인왕 후보로 손색이 없다. 케이비오(KBO)리그는 2008년 이후 퓨처스리그를 거친 중고신인이 신인왕을 차지해 고졸 신인 이정후의 활약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정후는 “‘바람의 손자’는 저랑 맞지 않는다. 저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별칭을 얻고 싶고, 그걸 받기 위해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이 오히려 엘지 이병규(은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병규는 잘 치고 잘 달리고 잘 수비한다는 점에서는 이종범과 다르지 않지만 좌타자에 외야수였다는 점이 이정후와 같다.
이정후는 “올해는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잘 치르는 게 목표”라며 “시즌이 끝난 뒤 스스로 한 단계 성장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정후의 올해 가장 큰 숙제는 체력을 키우는 것이다. 코치들도 타격 자세보다는 체력과 컨디션 관리 등에 더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넥센 히어로즈 이정후가 지난달 21일 넥센 홈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언젠가 메이저리그 진출도 꿈꾸고 있다. 그는 “우리 팀에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배들이 많다”며 “군대도 갔다 와야 하고 아직 먼 이야기지만 언젠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활약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정후가 한국 프로야구에 남기고 싶은 족적은 무엇일까. 그는 도루 타이틀에 대해서는 굳이 “큰 관심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최다안타 타이틀만은 꼭 보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타이틀은 그의 아버지와 관계가 깊다. 시즌 최다도루 타이틀은 이종범(당시 해태)이 1994년 84개를 성공해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반면 시즌 최다안타 타이틀은 2014년 넥센 서건창(201개)에 의해 이종범이 세운 기록(196개·1994년)이 깨졌다.
이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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