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가 아닌 경험, 이른바 ‘스트리밍 시대’입니다. 스트리밍은 실시간 재생 기술로,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데이터가 처리된다는 뜻입니다. <스트리밍 스포츠>에서는 새로운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스포츠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1992년, 9살 소년이 그날의 착한 어린이로 뽑혔다. 담임선생님은 그에게 프로야구 잡지를 선물했다. 태어나서 처음 선생님께 받아보는 선물이었다. 소년은 잡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잡지 내용을 ‘달달’ 외울 때쯤, 소년은 아버지가 티브이로 야구 중계를 볼 때 옆에서 백과사전 수준의 지식을 뽐냈다. 아버지는 “네가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느냐”며 놀랐다. 소년은 뿌듯함에 야구를 더 좋아하게 됐다. 28년 뒤, 소년은 야구 팬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가 됐다. 프로선수도 코치도 아니다. 해설위원이나 구단 관계자도 아니다. 김남현(36) ‘프로동네야구’(PDB) 실장 이야기다.
김남현(36) 프로동네야구(PDB) 실장이 유튜브 촬영 중 환하게 웃고 있다.
■ 프로야구? 아니, 프로동네야구!
김남현씨는 동네야구 전문가다. 스스로 “운동신경이 없고, 야구 실력은 평균 이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야구를 ‘제대로’ 즐기는 기준에서 본다면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김남현씨는 인터넷 카페 ‘프로동네야구’와 유튜브 채널 <프로동네야구 PDB>를 운영한다. 카페 회원 수는 약 2만명. 유튜브 구독자는 24만명이 넘는다. 케이비오(KBO) 공식 유튜브 채널(8천600)의 30배 규모다.
사실 김씨는 7년 전만 해도 광고대행사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김씨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야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야구를 할 공간이 없었고, 같이 할 사람도 부족했다. 수입이 적어, 리그 참가비 등을 내야 하는 사회인 야구에 끼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때 생각한 게 ‘동네야구’였다.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고, 블로그에 글을 써서 사람들을 모았다. 2013년 8월의 일이다.
김남현씨가 개설한 인터넷 카페 ‘프로동네야구’. 프로동네야구 누리집 갈무리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야구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이 연락하기 시작했다. 주로 경제력이 없는 청소년들이었다. 함께 동네 유수지 공원에 모여 캐치볼을 했다. 새벽에 학교 운동장에 몰래 베이스를 그려놓고 아침에 모여 경기를 하기도 했다. 공원에선 산책하던 시민들은 민원을 넣었고 학교 운동장에선 경비노동자들에게 내쫓기기 일쑤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와서 야구를 하겠다니 허가해주는 곳이 없었죠. 특히 야구는 위험하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안정적인 장소를 구하자니 결국 돈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야구를 하고 싶어 찾아오는 청소년들에게 돈을 받을 순 없었다. 그는 신용보증재단에서 돈을 빌려 회사를 차렸다. 광고 업계 인맥을 활용해 광고도 몇 개 얻었다. 버는 돈을 전부 프로동네야구에 쓰기 시작했다. 삶의 중심이 회사에서 야구로 변하기 시작했다.
■ 모두에게 야구 할 자유를!
왜 그는 빚까지 내면서 야구를 했을까?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너무 좋았거든요. 아이들이 공을 던지고 치고 하는 모습을 보면, 어릴 때 야구를 하던 기분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이런 모임이 워낙 없다 보니 나중에 이걸 가지고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죠”
서울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어린 시절 주말이면 야구를 보러 잠실경기장에 가곤 했다. 당시 김씨는 해태 타이거즈를 좋아했는데, 어른들 사이에서 신문지를 구겨서 원정팀을 꿋꿋하게 응원할 정도였다. 김씨의 야구사랑은 야구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직접 야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배트나 글러브를 사기에는 돈이 없었다. “어릴 때 비싼 글러브를 사달라고는 못 하니까, 각목이랑 테니스공으로 야구를 했어요. 신주머니로 1루를 만들고, 과자 상자로 2루·3루 만들어서 야구를 했죠. 열악했지만 정말 재밌었어요”
김씨는 청소년들과 야구를 하면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야구가 즐거워진다고 했다. “지금도 야구를 하다가 초코파이 한 상자 사 와서 그 박스를 두고 경기를 하곤 해요. 경기가 끝나면 다 같이 모여서 운동장에서 짜장면도 시켜먹죠. 그렇게 먹는 짜장면은 정말 맛있고 각별해요”
뛰어난 투구로 ‘초딩(초등학생) 오승환’이란 별명을 얻은 초등학생. 김남현씨는 유튜브에 초등학생부터 사회인 야구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야구를 즐기는 모습을 올린다. 유튜브 갈무리
야구 시합을 앞두고 초등학생들과 팀을 짜는 김남현씨(가장 왼쪽). 유튜브 갈무리
청소년들만 프로동네야구를 찾는 건 아니다. “10대가 가장 많지만, 많게는 60대까지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옵니다” 7년을 꾸준히 운영한 덕인지 반응도 폭발적이다. 야구를 한다는 공지를 올리면 때론 현장에 400∼500명이 찾아온다. 너무 많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보기 힘든 새벽에 일정 공지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경기하는데, 그때도 사람들이 평균 100명 정도는 와요. 운동장의 네 귀퉁이에서 야구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캐치볼을 하는 식으로 운영하죠” 김씨는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부산 모임에도 100명 넘는 사람이 왔다고 했다. 카페 회원 2만명 대부분이 적어도 한번은 모임을 나왔던 사람이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왜 프로동네야구에 열광할까? “야구는 단체 스포츠잖아요. 팀으로 묶이는 순간, 못하더라도 서로 격려해주고 다 같이 응원해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많이 오는데 성인들은 너무 세게 던지지 않고, 맞출 수 있게끔 공도 던져주고 잘 치면 잘했다 해주죠. 그러면서 때로는 진지하게 승부도 해요. 스포츠는 굉장히 치열할 것 같지만, 실은 그 안에 따뜻한 감정들이 더 많이 있어요”
사실 우리나라는 생활체육보다는 프로스포츠, 즉 엘리트 체육이 발전한 나라다. 야구는 특히 그렇다. 옆 나라 일본에선 동네 어디를 가든 야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선 프로구단 경기장 외에는 야구를 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야구의 형태가 다양하고, 즐기는 모습들도 다양한데 너무 프로야구에만 편중돼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 더 쉽고 재밌는 야구를 위하여
프로동네야구는 타격 자세 교정, 투구 강의 등 전문적 영상이 아닌 야구를 소재로 한 재밌는 영상을 주로 다룬다. 유튜브 갈무리
종이비행기 국가대표 선수들과 대결하는 프로동네야구. 유튜브 갈무리
빚까지 내서 어렵게 운영하던 프로동네야구는 유튜브가 인기를 끌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그는 유튜브가 유행하기 전부터 야구 영상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왔다고 한다. 유튜브 채널 <프로동네야구 PDB>에는 전문적인 야구 영상은 없다. 대신 야구를 소재로 한 재밌는 영상이 주를 이룬다. 바게트, 냄비, 종이 상자, 우산, 심지어는 수학 교과서를 가져와 야구 배트 대신 사용하는 콘테스트를 열거나 종이비행기 날리기 국가대표들을 초청해 야구공 대신 날아오는 종이비행기를 치기도 한다.
“저희는 야구 예능 콘텐츠 채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겁거나 어려운 콘텐츠는 없어요. 대신 야구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영상을 주로 올리죠. 야구가 실은 이렇게 즐거운 운동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야구를 우습게 만든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분들이 야구를 좁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크리켓 배트를 이용해 공을 치는 전 프로야구선수 양준혁(51). 유튜브 갈무리
그의 이런 생각은 영상 콘텐츠에서도 드러난다. 채널이 유명해지며 전·현직 프로야구선수도 출연했지만 진지한 영상은 없다. 두산 베어스 유희관(34)은 스크린 야구에 도전하고, 은퇴한 양준혁(51)이 등장해 아동용 알루미늄 배트와 크리켓 배트를 갖고 홈런에 도전한다. <패자부활전>에선 프로팀에서 방출된 뒤 프로 무대 복귀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과 남자국가대표보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여자국가대표 선수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사회인 야구의 재미를 전하기 위해 ‘사회인 야구 하이라이트’도 만들어 올린다. 야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어떻게 보면 저는 풀뿌리 야구를 하는 거잖아요. 생활야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프로야구의 인기도 많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야구의 밑바닥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있죠”
김남현씨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나이 50, 60이 됐을 때도 함께 야구를 하면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들과 함께 야구를 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포/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