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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감출 수 있는 비밀은 없다…스포츠 폭력, 괴물은 누구일까

등록 2021-02-17 16:06수정 2021-02-18 02:37

픽사베이.
픽사베이.

몇 달 전 지도자로부터 폭행 피해를 받았다는 아마추어 선수의 제보를 받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타학교로 전학을 갔다고도 했다. 하지만 막상 취재가 들어가자 피해자 쪽은 “사건을 확대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으나 미뤄 짐작건대 선수 장래 때문이었던 듯하다.

스포츠계는 폭행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주홍글씨’를 덧씌운다. “다루기 힘든 아이”라는 낙인이 찍히며 지도자뿐만 아니라 동료들과도 멀어진다. 이는 프로 지명 등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스포츠계는 지연·학연 등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포츠 내부 폭력은 은폐되기 일쑤다.

비단 지도자 탓만 할 것도 아니다. 일부 학부모는 지도자들의 폭행을 알고도 “아이의 진로를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묵인한다. 성적 부진으로 아이들이 감독에게 맞을 분위기면 “조용히 체육관 문을 닫아준다”고 말하는 부모도 있었다. 동료 선수 간 폭행에서도 비슷하다. 팀 스포츠의 경우 팀워크가 흐트러지면 성적이 잘 나지 않아 사건을 축소·은폐하기도 한다. 운동 학생을 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프로 선수가 될 때까지는 귀 막고 입 닫고 눈 감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유다.

‘엘리트 체육’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선택지는 없다. ‘스포츠 밖 세상’에 대한 공포는 이성까지 마비시키고 폭력은 묵인된다. 성적이 나야만 진학을 하고, 성적을 내야만 프로 진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선수들을 인터뷰해오면서 그들이 종종 했던 얘기는 “맞는 게 싫어서 운동을 관뒀는데 운동밖에 할 줄 몰라서 다시 시작했다”였다. ‘운동 관두면 뭐할 건데?’라는 물음은 그들에게 잔인한 현실을 일깨워준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이는 더욱 심해진다. 외나무다리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길밖에 방법이 없다.

스포츠계 폭력에서 자유로운 어른은 없다. 어른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길든 아이는 비슷한 어른으로 자란다. 팀 내 선후배 간 폭력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는 간혹 피해자가 된다. 물고 물리는 폭력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성적 지상주의, 운동몰입의 세계에서 이는 계속 되풀이된다. “운동만 잘하면 된다”는 논리는 이런 환경에서 잉태됐다.

현장 얘기를 들어보면 다행히 요즘 현장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는 한다. 아이들을 야구 선수로 키우고 있는 한 학부모는 “리틀야구의 경우 적어도 때리는 것은 몇 년 전부터 없어졌다. 언어폭력도 예전보다 순화된 편”이라면서 “시대가 바뀌니까 감독들 인식도 바뀌는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선수 모집도 안 된다”고 했다. 수년 전부터 학교 폭력이 전면 이슈화가 되는 터라 선후배 간 문화에도 변화가 있다고도 했다.

프로배구 학교 폭력 사건 이전에 프로야구는 이미 중학생 시절 학교 폭력 전력이 있던 선수를 아마추어 드래프트 1순위 지명에서 철회한 바 있다. 그 이전에 고교 3학년 때 학교 폭력 전력이 드러난 안우진은 키움 히어로즈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데뷔했고 50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마친 뒤 리그에서 뛰고 있다. 당시 KBO 사무국은 “아마추어 때 일로 프로 징계는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최근 들어 사안이 더욱 심각해지면서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선에서 드래프트 신청 때 학생기록부를 내는 식의 방법이 논의 중이다.

디지털 커뮤니티는 어느덧 대나무 숲이 됐다. 감출 수 있는 비밀은 없다. 시스템 안에 갇혀 ‘운동기계’로만 자라온 프로 선수들에게 학창 시절의 일탈로 ‘운동’을 뺏는 것이 일견 가혹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폭력이 근절될 수 있다면 과감한 결단은 필요하다. 성적으로 묵인된 폭력의 고리를 이제 끊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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