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기 키움 히어로즈 감독이 홈구장인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키움 히어로즈 제공
선수 시절 그의 가방에는 크기가 다른 글러브 5개가 들어있었다. ‘전천후 내야수’의 숙명이었다. 내야에 구멍이 생기면 그가 해결사로 나섰다. 백업 선수의 숙명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는 선수들 마음을 더 잘 헤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로야구 지도자 최초로 심리상담사 자격증까지 땄으니 말은 다했다. 작년 말 손혁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태로 뒤숭숭했던 팀을 추스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해마다 전력 보강보다는 유출이 더 많은 팀, 해마다 위기를 겪으면서도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가는 키움 히어로즈의 새로운 수장 홍원기(48) 감독과 최근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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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와 함께 한 14년
잡초 같던 선수 시절이었다. 허리 부상은 연례행사였다. 2005년 말 어렵게 얻은 자유계약(FA) 자격은 ‘사인 앤 트레이드’로 끝났다. 두산 베어스에서 현대 유니콘스로 적을 옮겼으나 2년 뒤 현대는 해체됐다. “2008년 1월 강창학야구장에서 혼자서 은퇴식을 했다”는 홍 감독은 이후 서울히어로즈 구단 창단과 함께 전력분석원으로 변신했다. 수비코치(2009~2019년), 수석코치(2020년) 등을 거친 뒤 지난 1월 감독으로 발탁됐다.
손혁 감독 중도 사퇴 때 함께 팀을 떠날까도 했지만 “남겨진 선수들이 눈에 밟혀서” 마음을 접었다. 히어로즈 구단 태생과 함께 했고 아직은 팀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홍 감독은 “14년째 한 팀에 몸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 팀 문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잘 안다”면서 “히어로즈는 기회가 동등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 어린 선수들이 실패를 통해 배워나가는 자가주도형 분위기가 잡혀 있다”고 했다. 더불어 “히어로즈 최강점은 어린 선수들의 두려움 없는 도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가 이어지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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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성이 떠난 자리 메우기
일단 히어로즈는 올해 ‘김하성’을 지워야 한다. 공수에서 그의 역할이 컸던 터라 난제 중의 난제다. 일단 주전 유격수 자리는 김혜성(22)을 보고 있지만 그는 확답을 피한다. 홍원기 감독은 “경험치에 있어서 김혜성이 경쟁에서 많이 유리한 것은 맞다. 하지만 김혜성은 다른 경쟁자가 있어야만 더 집중하는 타입”이라면서 “김휘집, 신준우도 함께 보고 있다”라고 했다.
특히 신일고 출신의 신인 김휘집(19)을 눈여겨보고 있다. 홍 감독은 “연습경기를 보니 고졸 선수치고는 빨리 성장할 것 같다. 바운드 처리나 넥스트 플레이 때 생각을 한 단계 더 하고 풋워크도 좋다”면서 “옛날 박진만 같은 스타일인데 7~8회 수비 강화 때 기용하면서 성장을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히어로즈에서는 몇몇을 빼고는 보장된 주전 자리가 없다. 신인이 치고 올라오면 자리는 뺏긴다. 히어로즈 자율 경쟁 분위기는 이렇게 형성됐다. 홍 감독이 내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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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속출’ 투수 파트도 구멍 송송
선발 로테이션은 에릭 요키시(32)와 조쉬 스미스(34), 안우진(22), 최원태(24), 이승호(22)가 채운다. 꽤 짜임새가 있어보이지만 물음표는 있다. 홍 감독은 “보통 국내 외국인 투수는 3년 차에 고생을 한다. 요키시가 작년(12승7패 평균자책점 2.14)에 잘했지만 이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면서 “스미스도 아직 검증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한현희(손가락)와 이영준(팔꿈치)은 현재 부상 중이고 마무리 조상우(발목)는 5월에나 복귀한다. 홍 감독의 고민이 이래저래 늘어나는 이유다. 현재 구멍 난 뒷문 자리는 오주원(36)과 양현(29)에 맡길 생각이다. 연습경기 때부터 시속 155㎞ 강속구를 뽐내고 있는 신인 장재영(19)은 필승조로 활용된다. 홍 감독은 “안우진이 그랬듯이 계단식으로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게끔 해줘야 한다. 장재영에게는 과정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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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경청과 인내의 자리
홍원기 감독은 요즘 오전 7시에 야구장에 나와 개인 운동을 한다. “지도자도 선수처럼 체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보 사령탑이 그리는 지도자의 모습은 어떨까. 홍 감독은 “베스트 9만 갖고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 주전부터 백업까지 더그아웃 모든 선수들이 1경기 승리를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4번 타자의 홈런도 중요하지만 백업 선수의 수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수 시절 경험이 녹아있는 답이다. 그는 “선수 시절을 되돌아보면 실책 등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 코치 생활을 하면서 많이 했던 생각이 ‘귀를 먼저 열고 그 다음 입을 열자’였다”고 밝혔다.
요즘 트렌드가 된 데이터 야구에 대해서는 “결국 데이터를 다루는 것은 사람이다. 현장 상황과 신중하게 접목해야만 한다”면서 “감독 혼자서는 다 못한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경청하고 최종 판단만 내가 하면 된다”라고 했다.
그는 선수 시절 ‘히어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승리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꼭 필요한 존재였다. 경청과 인내로 선수들을 ‘히어로즈’로 이끌려는 그의 야구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