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 출신 카브레라 생애 첫 US오픈 제패
‘캐디’ 출신 카브레라 생애 첫 US오픈 제패
아르헨티나여, 너무 기뻐 울지마오…
세계랭킹 1위 타이거 우즈(미국)와 3위 짐 퓨릭(〃). 이들이 뒷조에서 1타차로 심하게 압박을 가했다. 다른 선수들 같으면 ‘메이저대회 12회 우승’에 빛나는 ‘골프황제’의 위용에 눌려 지레 겁을 먹고 무너질 상황. 그러나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핸디캡 1번홀인 마지막 18번홀(파4·484야드)에서 파세이브를 기록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최종합계 5오버파 285타 단독선두로 마감. 꿈같은 우승이 그의 눈앞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다려야 했다.
그의 바로 뒷조 있던 퓨릭이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으면 동타를 이뤄 그와 연장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퓨릭은 두번째샷 실수로 결국 파세이브에 그치며 먼저 우승경쟁에서 탈락했다. 이제 남은 건 우즈 뿐. 15번홀까지 6오버파로 선두에 1타 뒤진 우즈 역시 남은 3개홀에서 버디 1개를 반드시 잡아야 했다. 그러나 우즈 역시 샷 난조로 3홀 연속 파세이브에 그쳤다. 우즈가 18번홀 10m 거리의 내리막 버디퍼팅에 실패한 순간, 클럽하우스에서 초초하게 이를 지켜보던 그가 벌떡 일어나 우승 기쁨을 만끽했다.
짧은 목과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때문에 ‘엘 파토’(El Pato) 즉, 오리라는 별명을 얻은 아르헨티나의 골프영웅 앙헬 카브레라(38). 1m82·90㎏ 거구인 그가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은 이처럼 극적이었다. 18일(한국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인근 오크몬트컨트리클럽(파70·7230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107회 유에스(US)오픈 챔피언십 마지막날 4라운드. 카브레라는 ‘사상 최악’이라
는 오크몬트 코스에서 무려 5개의 버디를 잡아낸 가운데 보기는 4개로 막으며 상위권 선수 중 유일하게 언더파를 쳐 126만달러 우승상금 주인공이 됐다.
카브레라는 남미출신으로 유에스오픈을 제패한 첫 선수로도 기록됐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메이저대회 우승은, 1967년 브리티시오픈 챔피언 로베르토 데 빈첸초에 이어 두번째. 무려 40년 만이다. 카브레라는 “이번 우승을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바친다”고 했다.
10대 때 고향동네(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친구집 골프장 캐디로 골프와 인연을 맺은 그가 불혹을 앞두고 생애 첫 유에스오픈 챔피언에 올랐기에 그는 또하나의 ‘인생역전’ 케이스가 됐다. 15살에 본격 골프에 입문한 뒤 20살에 프로로 전향한 그는 세차례 유럽프로골프 투어 퀄리파잉 스쿨에 낙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5년 파라과이오픈과 콜롬비아오픈 등 두차례 남미대회 우승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유럽프로골프 투어에서 통산 3승을 올리며 주목을 받았다. 미국프로골프 투어에서는 그동안 1승도 올리지 못했으나, 이번 우승으로 골프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카브레라의 주특기는 300야드를 훌쩍 넘기는 호쾌한 장타. ‘빅히터’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주로 유럽무대서 뛰던 그는 지난해 비회원으로 미국프로골프 투어에 뛰어들었으며, 올해 상금랭킹 151위로 처져 내년 투어 카드 확보가 불확실한 처지였다. 하지만 이번 우승으로 5년간 투어 카드를 확보했고, 시즌 상금랭킹도 24위(147만8560달러)로 껑충 뛰어올랐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107회 US오픈 챔피언십 최종순위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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