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무 선임기자
김경무 선임기자의 스포츠오디세이 /
최경주와 양용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대성공을 거둔 대한민국 간판 골퍼들이지만, 스폰서 문제에선 요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미국의 나이키골프와 계약이 만료된 최경주는 에스케이텔레콤 등 서브스폰서는 구했지만 메인스폰서를 얻지 못하는 바람에 모자 앞면에 ‘K. J. CHOI’라고 새기고 투어를 뜁니다. 자신의 영문 이름이지만, 최경주재단 로고이기도 하다는군요. 올해 초부터 한동안은 태극마크를 새기고 뛰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피지에이 챔피언십 우승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양용은. 그도 올해 초부터 ‘KOTRA’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투어를 뛰고 있습니다. 스폰서가 없는 마당에 코리아 브랜드 이미지나 높이자는 취지이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양용은은 미국 골프클럽 및 공 브랜드인 테일러메이드 후원을 받았는데, 몸값이 급등하자 그쪽으로부터 외면당해 메인스폰서 없이 투어를 돌고 있습니다. 외국 브랜드인 르꼬끄골프와 의류 후원계약은 맺었으나, 세계적 골프용품 업체들은 갑자기 대스타가 된 양용은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대스타로 뜨기 전에 싸게 그들을 이용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다가, 몸값이 치솟으면 돌연 외면하고 마는 유명 골프용품업계의 약삭빠른 상혼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합니다.
최근 국산 골프공 생산업체인 볼빅의 문경안 회장을 만났는데, 그는 “골퍼들이 국산 품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데도 외제 공만 선호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선수들이 국산품을 애용해야 외화 낭비도 막고, 국내 골프용품업계도 살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실제 요즘 국내 골프계는 프로나 아마 할 것 없이 공이든 클럽이든 캘러웨이나 테일러메이드, 타이틀리스트, 핑 등 미국산 브랜드 제품 선호 현상이 뚜렷합니다. 게다가 투어스테이지, 프로기아(PRGR), 젝시오, 스릭슨 등 일본 브랜드 사용도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에 따라 랭스필드나 이투(E2)골프 등 국산 골프클럽 업체들은 힘겨운 싸움을 벌여가고 있습니다. 골퍼들이 외국의 유명 브랜드와 후원계약을 맺고 그쪽 공이나 클럽을 사용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이제 공이나 용품은 국산도 외국 브랜드에 견줘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질이 좋아졌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골프계의 국산품 애용운동. 박정희 정권 때의 1970년대식 구태의연한 발상일까요.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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