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 ‘방과후 교실’로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첫 수업날 바로 그 다음주. (만 21살의) 박세리가 1998 유에스(US) 여자오픈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로) 우승했다. 워터해저드에서 ‘맨발 투혼’을 벌인 박세리의 우승 소식이 텔레비전을 통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마냥 신기해했다. 그래서 더욱 골프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방과후 활동으로 바이올린도 함께 시작했지만, “심사위원이나 청중이 아닌 스코어가 승자를 결정한다”는 생각에 골프에만 전념했다.
■ 바이올린 대신 골프채를 잡은 소녀 ‘박세리 키드’로 그렇게 골프를 시작한 어린 소녀는 이후 대원외고 시절인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 우승으로 2관왕에 오르며 골프인생의 화려한 제1막을 장식했다. 이어 2008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해 4월 김영주골프 여자오픈 때 데뷔 첫 우승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통산 7승을 올리며 국내 강자로 군림했다.
그리고 11일(현지시각)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의 브로드무어 이스트코스(파71·7047야드)에서 막을 내린 제66회 유에스여자오픈. 드라이버샷 평균 비거리 270.1야드의 장타, 그리고 정교한 아이언샷(그린적중률 71%)과 퍼팅(홀당 1.68개)을 뽐내며 생애 첫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퀸에 등극했다.
20대 초반에 세계 최고 무대 정점에 오른 골프인생 제3막은 너무나 극적인 반전이었다. 지난해 국내 여자투어 상금랭킹 4위 자격으로 이번에 두번째 출전해 일궈낸 우승이기에 더욱 값졌다. 국내 투어 강자 유소연(21·한화)의 역전우승 드라마가 전세계에 감동을 주고 있다.
■ 명예의 전당 입성이 목표 선의의 경쟁자이자 맞수인 서희경(25·하이트)을 16~18번홀까지 3홀 연장전에서 3타 차로 물리친 유소연은 “나의 꿈은 명예의 전당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라며 자신의 최종적 목표까지 당차게 밝혔다.
그는 이어 “박세리가 유에스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때 골프를 시작해 이 대회는 정말 나에게 특별하다. 그런데 내가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정말 행복하고 믿기지 않는다.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승 뒤 자신의 롤모델이던 박세리 선수가 샴페인을 뿌려주며 축하해준 것에 대해선 “직접 축하를 받아 너무 기뻤다. 꿈만 같다. 2~3년 전에 함께 플레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재능이 있으니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해줬었다. 많은 동기 부여가 되었는데 이렇게 직접 축하를 받으니 더 기념이 될 만한 우승이 된 것 같다”고 감사해했다.
■ “4R 3홀서 연장전 치른 것 도움” 유소연은 11일 마지막 4라운드 잔여 경기를 치른 3홀(16, 17, 18번홀)에서 연장전을 치른 것에 대해서도 “아무래도 같은 그린 빠르기와 같은 조건에서 연장전을 치렀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어 4라운드 18번홀(파4·433야드)에서 서희경에게 1타 뒤지고 있을 때 마지막 퍼팅을 남기고 있던 기분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긴장했는데, 이것을 넣으면 남은 플레이를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긴장을 풀기 위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퍼팅을 했다”고 털어놨다.
유소연은 18번홀에서 170야드를 남기고 6번 아이언으로 두번째 샷을 했는데, 홀 2m 부근에 붙였고, 내리막의 어려운 버디 퍼트였지만 과감한게 홀컵에 공을 밀어넣었고 결국 그것으로 서희경과 최종합계 3언더파 281타 공동선두를 기록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
■ 스윙 교정 효과 그는 올 시즌 지난 6월 국내 투어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강해진 이유도 밝혔다. “기술적으로 스윙을 교정한 것이 리듬감을 찾으면서 자신감을 얻은 게 주효했다.”
유소연은 앞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연습을 하다가 에비앙 마스터스에 출전할 예정이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다시 하반기 국내 투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는 “엘피지에이 진출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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