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제주에서 열린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대회에 출전한 이예정이 아버지 캐디 이기호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프로치 샷을 한 뒤, 공의 궤적을 살피고 있다.
딸 몰래 한숨 쉬는 ‘아빠 캐디’들
성적 부진하면 다투기도
헌신적 뒷받침 강점 있지만
과보호가 경기력 억제 비판
성적 부진하면 다투기도
헌신적 뒷받침 강점 있지만
과보호가 경기력 억제 비판
속이 타들어간다. 힘차게 티샷한 공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는데, 끝이 휘어지면서 수풀에 들어간 것 같다. 제발 공을 찾아야 하는데….
열심히 퍼팅 라인을 살펴서 공을 놓아 주었건만, 퍼터를 떠난 공은 야속하게 홀을 살짝 비켜 간다. 딸 눈치 보느라 한숨도 못 쉰다. 딸 몰래 피우는 담배가 달다.
이제 3년째다. 이기호(46)씨가 생업을 멀리하고 딸 이예정(19·에쓰오일)의 전속 캐디를 한 지가. 2010년 국내 3부투어에서 5승을 올리며 정규투어에 당당히 진입했던 딸은 지난해 단 한번 톱 10에 들었을 뿐이다. 다행히 올해 들어 이데일리 레이디스 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마수걸이를 했다. 상금도 1억원. 계속 우승할 것 같았지만 현실은 아니다. 선두권을 계속 유지하기도 어렵다.
성격이 좋은 딸이지만 때로는 다툰다. 대부분 성적이 나쁠 때.
“너무 미안해요. 아버지에게 성질을 내서는 안 되는데….” 이씨는 딸의 신경질을 받아주는 데 익숙하다. 남도 아니고 내 딸인데.
한국 여자프로골프가 미국 무대를 휘저어 놓은 것은 절대적으로 이씨 같은 아버지들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과도한 보호가 선수들의 경기력을 억제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주 제주에서 열린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프로데뷔 7년 만에 처음 우승하고 눈물을 흘린 정혜진(25·우리투자증권). 어릴 때부터 자신의 캐디로 따라다니던 아버지가 캐디를 ‘포기’한 다음 바로 우승을 차지했다. 정혜진의 아버지 정종철(51)씨는 “이제 분위기를 바꿔보자”며 제주에 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제는 ‘골프 대디’ 시대는 점차 가고 전문 캐디 시대가 오고 있다. 국내 골프 무대에서도 이미 10~20명의 전문 캐디들이 상위권 선수들의 캐디를 전담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아버지 캐디들이 상당수이다. 최근 국내대회 출전하는 108명의 여성 골프선수 가운데 전문 캐디를 쓰는 선수들은 15명 정도. 해당 골프장의 캐디를 쓰는 경우도 15~20명 정도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아버지 등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이 캐디를 봐준다. 전문 캐디의 경우 1년 계약을 하기도 하지만 경기당 100만원 정도의 수고비를 받는다. 해당 골프장의 캐디를 쓰는 경우도 5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골프 대디들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서도 자신들이 무거운 골프백을 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 얼 우즈는 한번도 어린 우즈에게 골프 칠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즈를 5살에서 11살까지 지도했던 루디 듀랜은 “우즈의 아버지는 골프 성적을 중시하지 않았다. 얼마나 아들이 골프를 배우는 데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느냐에 대해 관심을 쏟았다”고 회상했다.
최근 한국와 일본의 프로무대를 휩쓴 김효주(17·대원외고)의 아버지 김창호(53)씨는 골프를 잘 모른다. 가능한 한 딸을 따라다니지도 않는다. 이제 신세대 골퍼들은 본인이 즐거워야 성적이 난다.
한 유명 선수의 아버지는 너무 극성스러워 스폰서가 계약하며 “아버지가 골프장에 나타나면 계약은 해지”라는 기상천외한 조항을 넣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프로배구 엘아이지(LIG, 옛 LG화재)에서 선수로 뛰다가 전문 캐디로 나선 구본왕(40)씨는 “미국에서처럼 국내 골프도 곧 전문 캐디들이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5일부터 제주에서 열리는 에쓰오일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제주 엘리시안컨트리클럽)에 딸의 캐디로 다시 나서는 이씨는 “제주의 까다로운 그린이 신경 쓰인다”며 코스 맵을 꼼꼼히 메모했다. 마침 에쓰오일은 딸의 스폰서 기업이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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