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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캐디, 나의 아내

등록 2013-09-15 19:52수정 2013-09-16 16:50

국내 남자프로골프 최고참 이부영과 그의 아내 겸 캐디인 서진숙씨가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대회에 참가해 경기를 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국내 남자프로골프 최고참 이부영과 그의 아내 겸 캐디인 서진숙씨가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대회에 참가해 경기를 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골퍼 이부영-캐디 서진숙 부부
캐디 못구하자 엉겁결에 출전
“우승하는 남편 모습 보았으면…”
프로골퍼 이부영(49)이 벙커에 있는 공을 힘차게 파냈다. 어른 키보다 높은 벙커 턱을 힘겹게 넘어 그린에 떨어진 공은 홀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순간 “여보, 들어갔어. 버디야”라는 큰 소리가 골프장을 울렸다. 주변의 갤러리가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를 치며 기뻐한 이는 바로 그의 캐디. 골프화에 묻은 모래를 털며 그린에 올라온 이부영은 아내이자 캐디인 서진숙(44)씨와 환하게 웃으며 주먹을 부딪쳤다.

지난 13일 한국프로골프투어(KGT) 동부화재 프로미오픈 이틀째 경기가 열린 강원도 횡성의 웰리힐리컨트리클럽 11번홀에서 벌어진 일이다. 서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프로골퍼 남편의 캐디를 전담하고 있다.

부부관계가 좋아서 그런지 둘은 경기 내내 웃는다. 상황 파악은 남편이 하고, 아내는 도움을 준다. 그래서 갈등도 거의 없다. 남편이 “여보, 9번 아이언 줘”라고 말하면, 아내는 웃는 얼굴로 캐디백에서 아이언을 뽑아 준다.

아내는 물론 골프를 전문적으로 쳐본 적이 없는 전업주부였다. 1989년 대전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세미프로였던 남편을 우연히 만났다. 남편은 결혼한 다음해에 프로테스트에 합격했고, 이듬해엔 신인상까지 거머쥐며 잘나갔다.

아내가 남편의 캐디 구실을 하게 된 것은 2006년부터. 중국 대회에 출전한 남편은 마땅한 캐디가 없자, 함께 온 아내에게 캐디백을 맡겼다. “우선 마음이 편해요. 일반 캐디와 경기에 나서면 선수도 이런저런 신경을 많이 써야 하지만 아내는 항상 웃으면서 편하게 대해줘요. 그러니 더 경기에 몰두할 수 있어요.”

남편은 아내가 힘들게 캐디백을 메고 따라오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아내는 남편의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할 만큼 안타깝다. “처음에 캐디백을 메고 그린에 올라서니 갤러리로 경기를 볼 때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남편의 퍼팅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눈을 감았어요.”

이부영은 아직 한번도 우승 맛을 보지 못했다. 1999년과 2004년에 상금순위 7위에 올랐고, 2004년 프로골퍼 최강전 등 3차례 준우승을 했을 뿐이다. 이번 동부화재 프로미오픈에서도 공동 39위(1오버파)에 그쳤다. 한때 국내에서 꼽히는 장타자였으나 이제는 젊은 선수에게 밀린다. 시니어 프로(50살 이후)에 진입하기 전 우승을 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아내는 “한번이라도 우승하는 남편 모습을 보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서도 “국내 남자프로 가운데 최고참으로 건강하게 선수생활을 하는 남편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남편이 사랑스런 눈길로 지그시 바라본다.

횡성/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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