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리는 유로 2020 4강전에 출전하는 잉글랜드의 골잡이 해리 케인(왼쪽)과 덴마크의 공격수 카스퍼 돌베리. AFP 연합뉴스
‘축구가 고향으로 돌아온다’(Football’s coming home).
잉글랜드 축구 팬들이 대표팀을 응원하면서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는 ‘풋볼스 커밍 홈’이다.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로 우승컵이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은 유로 1996 대회 응원곡이다. 1996년 유로 대회를 개최한 잉글랜드는 1966년 월드컵 이후 30년 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 사상 첫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을 노렸다. 잉글랜드가 낳은 최고의 재능이라 불린 폴 개스코인을 중심으로 걸출한 골잡이 앨런 시어러, 테디 셰링엄 등을 앞세워 4강 진출을 이뤘다. 영국 축구의 성지로 불리는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는 라이벌 독일에 승부차기 패배로 첫 우승에 실패했다.
현대 축구의 기틀을 다진 잉글랜드가 유럽 챔피언 경험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유로 2020 대회 4강에 오른 4개 팀 중 잉글랜드는 유일하게 우승 경험이 없는 팀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세계 스포츠 베팅 업체가 지목한 우승 확률 1위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선부터 본선까지 15전 전승으로 4강에 오른 이탈리아보다 잉글랜드의 전력이 강하다는 평가다.
창설 60주년을 맞아 유럽 11개 도시에서 분산 개최한 이번 대회는 영국 런던 웸블리 경기장에서 준결승전(7일 이탈리아-스페인, 8일 잉글랜드-덴마크)과 결승전(12일)이 개최되면서 잉글랜드가 이점을 누리고 있다.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전까지 모두 웸블리에서 치른 뒤 8강전만 이탈리아 로마에서 우크라이나와 중립 경기로 치렀다. 다시 웸블리로 돌아온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 참가 팀 중 이동 피로가 가장 적은 팀이다.
이번 대회 녹아웃 스테이지에는 유독 연장전 승부가 많았는데, 잉글랜드는 독일과 16강전을 90분 간 2-0 승리로 마쳤고, 우크라이나전도 일찌감치 4골을 몰아넣고 후반 중반 주전 선수를 대거 교체하며 휴식을 줬다. 4강 진출 팀 중 스페인은 두 차례나 연장전을 소화했고, 이탈리아도 오스트리아와 16강전에 연장 접전을 벌였다.
주전과 비주전 선수의 실력 편차가 적은 잉글랜드는 로테이션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한 팀이다. 나란히 3골 씩을 기록한 해리 케인과 라힘 스털링의 공격 파트너로 메이슨 마운트와 필 포든, 잭 그릴리시, 마커스 래시포드, 부카요 사카, 제이든 산초가 선발과 교체 출전을 번갈아 했다. 리버풀의 주장 조던 헨더슨, 첼시의 주전 풀백 리스 제임스, 벤 칠웰이 벤치에 대기하고 있을 정도로 선수층이 두껍다.
유로 2020 대회의 전술 트렌드인 ‘풀백의 역량’에서도 잉글랜드는 최고 수준이다. 레프트백 루크 쇼는 날카로운 크로스 패스와 안정적인 대인 수비, 라이트백 카일 워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커버 플레이를 펼치며 잉글랜드가 무실점으로 4강에 오르는 데 기여했다.
역대 가장 흥미로운 축구 대회라는 평가가 따를 정도로 공격적인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와중에 잉글랜드는 풀백의 전진을 제한하고, 데클란 라이스와 캘빈 필립스로 구성된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두 센터백 앞을 지키며 가장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수비 축구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탈리아가 공격 축구로 환골탈태한 가운데 잉글랜드는 실리적인 수비 기반 역습 축구로 이번 대회에서 가장 냉정한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단단한 수비에 신속한 역습, 확실한 마무리 능력을 갖춘 잉글랜드는 우크라이나와 8강전에 세트피스로만 두 골, 대회 역사상 단일 경기 최고 헤더 3득점을 뽑아내며 단순한 방식으로 골을 뽑아내는 덕목까지 보여주고 있다.
동화 같은 4강 진출을 이룬 덴마크 선수들은 체력이 바닥나고 있고, 이탈리아는 대회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평가받은 레오나르도 스피나촐라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전치 4개월 판정을 받았다. 스페인은 여전히 최전방 공격수의 결정력에 숙제가 있다. 전력상으로나 일정상으로, 경기가 열리는 장소 여건까지 모두 잉글랜드의 사상 첫 유로 우승 시나리오를 말하고 있다. 예측불허의 승부가 펼쳐지는 유로 2020의 챔피언을 가리는 데 이제 3경기만 남았다. ‘앙리 들로네’ 트로피는 축구의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축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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