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시작하고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면 답도 있었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가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수오서재)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수동적인 대상에 머무는 것을 싫어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체로서, 주인으로서, 환경을 통제하고 자기를 잃지 않으려고 했다.
스테레오 타입으로 이뤄지는 옛 지도자들의 훈련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은 당연했다. “지도자들은 자신이 배운 대로 우리를 가르친다. 타이어를 끌며 뛰게 했고, 계단과 운동장을 뛰게 했다. 어디에 도움이 되고, 지금 단계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설명은 없었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무리한 운동으로 부상을 입고,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에 연골이 닳고 근육이 상해 수술에 의지해 버티는 상황도 목도했다.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사라진 선수들을 보면서, 그의 가슴엔 기득권 질서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반감이 자리 잡았다.
그는 어린아이들의 근육을 고사리에 비유한다. “아직 다 자란 게 아니라면 무리한 충격을 가해선 안 된다. 어린 고사리를 다루듯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눈앞의 성과를 위해,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희생시키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유소년 선수들에게 자상한 지도자도 있었겠지만, 전체적으로 한국의 학원 축구에서는 권위적인 지도자 아래 강압적인 선수 훈련이 이뤄져 왔다. 그건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던 시대의 소산이기도 했다.
국가주의 스포츠 정책은 이런 토양을 구조화했다. 학교는 엘리트 선수를 발굴 육성하는 기지 구실을 했고, 선수의 운명은 지도자나 학교의 이해타산에 의해 결정되기 일쑤였다.
손웅정씨도 중학교 1학년 때 서산에서 춘천으로 팀을 옮기면서, 또 고교에 진학하고 다시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엘리트 스포츠 판에서 이뤄지는 부조리함을 처절하게 경험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합숙소 생활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무엇 하나 변변한 것 없었다.” “밥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던 시절, 군것질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았다. 다른 아이들은 집에서 보내준 용돈으로 오돌도돌 커다란 맘모스빵을 사다 먹었지만 나에겐 언감생심. 고봉밥을 먹는 것으로 버텼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묵묵히 견뎌야 할 일이라 생각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선수를 물건 취급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누구는 ‘그건 당신의 선택이니, 당신이 책임질 일이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선택이 애초 어른들의 디자인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면? 그렇다면 선수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상황과 의미와 맥락을 왜곡한 정치적 주장일 뿐이다. 가령 과거 선수 스카우트를 둘러싼 학교 간 경쟁, 선수 납치, 잠적, 실종, 졸업유예 등의 논란은 학교와 지도자들의 계획과 계산에서 불거진 일들이다.
성인들로 구성된 실업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성적에 집착해 선수들을 혹사하는 모습에서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누구를 위한 성적이고 누구를 위한 우승인가. 선수를 위한 트로피가 아닌, 선수의 몸을 희생해 얻는 지도자들의 실적과 다음 스텝을 위한 발판 같았다.” 손웅정씨가 한 때 실업팀 트레이닝 코치로 일하다가 대책 없이 때려치우고 나온 이유다.
이런 손웅정씨가 아들 손흥민을 학교 운동부에 보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측면 공격수로 뛰는 프로선수였지만 한 명을 제칠 수 있는 발기술이나 개인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기본기는 없었고 성적은 내야 했다. 나처럼 하면 안 된다. 나와 정반대의 시스템으로 가르쳐야 했다.” “한국축구의 고질은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에만 집착하는 데서 생겨났다. 경로를 바꿔야 했다. 눈만 뜨면 축구 프로그램을 생각했고, 사소한 아이디어도 기록하려고 메모장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결론은 기본기, 몸의 밸런스, 볼 감각 세 가지로 압축됐고, 손흥민은 리프팅, 간결한 볼 터치, 양발 사용, 나이에 맞는 체력·슈팅 훈련 등으로 세분화한 훈련을 받으며 조련됐다. 지금 들으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시엔 혁신이었다. 손웅정씨는 “아들이 분데스리가에서 데뷔골을 넣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났다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혜성같이 나타난 선수는 없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기본기가 발현된 것뿐”이라고 했다.
손흥민의 등록상표인 벌칙구역 모서리에서 드리블하며 감아차는 골도 연습의 산물이다. 손웅정씨는 200개 이상의 각종 축구 동영상을 돌려보며 공격수가 결정적 기회에서 실수하는 장면을 집중해서 분석했고, 손흥민의 슈팅 훈련에 개선점을 접목했다. 손흥민존의 감아차기슛은 “패스로 들어오는 공의 첫 터치부터 슈팅까지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한 뒤 때리는 무한 반복훈련의 산물”이라는 게 아버지의 설명이다. 물론 18살 이후 집중된 하루 왼발 500개, 오른발 500개 훈련은 기본이었다.
기존 관행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그는 창조적 파괴자다. 그는 학교의 처사에 반발해 중학교 축구팀에서 방출되자 춘천의 우두산 꼭대기에 있는 충열탑 계단에서 두칸식 다리 모아 뛰며 하체를 단련했다. 현재 운영 중인 손축구아카데미에는 스탠드의 높이가 다르게 설치돼 있는데, 아이들 훈련을 위한 이런 계단 배치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중학교 시절 그는 왼발을 사용하기 위해 오른발 축구화 덮개 부분에 압정을 박아 훈련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아들 손흥민이 양발을 잘 사용하는 것은 아버지의 특별한 지도를 통해 가능해졌다.
물론 즐기는 축구는 최고의 목표다.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전부다. 그는 흥윤, 흥민 두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수가 못되고 일반 학교에 가야 한다면 기술이나 농업을 배워라. 조금 일찍 하교해 좋아하는 축구를 하라. 직장을 잡을 때도 연봉이 낮은 대신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곳을 택하라. 그래서 시간이 남고, 좋아하는 것이 축구라면 축구를 하라.”
“나는 농부의 마음이다. 365일 파종한다. 하루라도 손을 놓으면 열매를 거두기 어렵다. 그리고 하나라는 숫자부터 시작한다. 이 하나를 완벽하게 익히기 전까지 절대 둘의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런 그의 축구 철학에서 손흥민이 나왔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