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FC 양현준이 지난 16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하나원큐 K리그1 22라운드 수원FC 방문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쿠팡플레이 시리즈 1차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와 K리그 올스타 간 경기가 열린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 0-1로 뒤진 전반 추가시간 패스를 달라며 손짓하며 뛰어온 양현준(강원FC)에게 라스(수원FC)가 툭 공을 내준다. 받자마자 변속 기어를 올린 양현준은 페널티 박스 모서리에서 왼쪽으로 한번 접으며 수비수 라이언 세세뇽(토트넘)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다시 오른쪽으로 치면서 에릭 다이어(토트넘)를 벗겨내고 마주한 골키퍼와 1대1 상황. 뒤늦게 뛰어든 다빈손 산체스(토트넘)의 태클을 살짝 피한 슈팅은 아쉽게 골대를 외면하고 만다. 6만4000명의 탄식이 들끓는다.
이 장면 하나로 이날 경기는 한순간 양현준의 쇼케이스 무대가 됐다. 후반 6분께 이명주(인천)와 원투패스로 오른쪽 측면을 허물고 깔끔한 컷백으로 라스의 동점골을 돕는 모습도 나왔다. 양현준은 이날 31분을 뛰었다. 팀 K리그 24명 중 출전시간은 5번째로 적지만 평점은 두 번째(7.3점)로 높았다. 축구데이터 분석업체 비프로일레븐의 자료를 보면 공격 지역 패스 성공률은 100%(6개)를 기록했고 드리블 돌파는 2번 시도해 2번 모두 성공했다. 양 팀 통틀어 그보다 더 많은 드리블을 성공한 선수는 세세뇽 한 명(3/4)뿐이다.
양현준이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친선경기에서 슛하고 있다. 연합뉴스
혜성처럼 등장한 한국산 ‘크랙(화려한 개인플레이로 경기를 뒤집는 유형의 선수)’의 충격을 K리그 팬들은 이번 시즌 초 앞서 경험했다. 양현준은 올해 20경기에 나서 4골4도움을 올렸다. 리그 도움 1위(7개)인 김대원과 함께 강원FC의 공격을 책임져 온 사실상 에이스로 4월과 6월 이달의 영플레이어상을 두 차례 받았다. 토트넘전 직후 이어진 16일 22라운드 수원FC 경기에서는 그림 같은 움직임으로 2골1도움을 기록, 강원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뒷발로 돌려 넣은 선제골과 돌파 후 골키퍼 키를 넘긴 로빙 역전골 모두 일품이었다.
2002년생 양현준은 올해 20살로 K리그에서는 22살 이하 자원에 해당한다. 22살 이하 유망주들의 출전을 의무화하고 있는 K리그에서 어린 선수들 대부분은 전반이나 후반 30분 남짓 출전시간을 채우고 교체되는 일이 빈번한 데 반해 양현준은 거의 매 경기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뛴다. 한준희 <한국방송> 해설위원은 “22살 이하이기 때문에 기용되는 선수가 아니라 기량 덕에 출장시간을 보장받는 선수다. 메시·호날두·루니가 어려서부터 중요한 선수였던 것과 같다”라고 설명했다.
강원FC의 양현준(오른쪽).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피드와 기술을 두루 갖춘 양현준은 잔디를 밟는 순간부터 팀의 출력을 높인다. 최용수 강원 감독은 수원FC과 경기 전 인터뷰에서 “팬들은 그 장면(토트넘전 드리블)을 보고 놀랐겠지만 나는
훈련장에서 늘 보는 모습이었다. 지도자 입장에서 가능성이 있는 친구를 더 성장시키는 게 숙제다. 현준이를 더 잘 성장시키고 싶다”며 제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경기 뒤에도 “까면 깔수록 양파같이,
상황마다 예상치 못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경기력에 기복도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현준은 K리그 유망주 육성 시스템의 잠재력을 대표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강원의 프로 2군팀 강원FC B에 입단해 K4(4부리그)를 뛰면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강원은 지난해 프로B팀 제도가 도입되자마자 선수 육성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과감하게 B팀을 꾸린 유일한 팀이었는데 그 효과를 벌써 보고 있는 셈이다. 한준희 위원은 “2군팀 운영이 확연히 선수 발굴에 도움이 된다. 리그를 규칙적으로 뛰는 일이 선수들의 동기부여나 실전 경기력에서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평했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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