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이 27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에스타디오 데 바예카스에서 열린 2022∼2023 프리메라리가 3라운드 라요 바예카노 방문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두 손을 번쩍 들며 기뻐하고 있다. 마드리드/EPA 연합뉴스
어느덧 빅리그 성인 무대 5년 차. 스페인에서 자기 증명을 위한 외로운 분투를 벌여온 ‘슛돌이’ 이강인(21·마요르카)의 새 시즌 출발이 범상치 않다. 리그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경기력도 호평 일색이다. 출전시간을 확보하는 일조차 버거웠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팀의 에이스로 만개할 기미가 완연하다.
이강인은 28일(한국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에스타디오 데 바예카스에서 열린 2022∼2023 프리메라리가 3라운드 라요 바예카노 방문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신고하며 2-0 완승을 이끌었다. 5-4-1 전형의 우측 미드필더 자리에 출전한 이강인은 포지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최전방의 194㎝ 장신 스트라이커 베다트 무리키(코소보)와 투톱으로 ‘빅 앤 스몰’ 짝을 이루기도 하고 중원까지 내려와 공을 간수하며 방향전환 패스 등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맡기도 했다.
무리키의 헤더 골로 리드를 잡은 뒤 후반 18분께 이강인이
쐐기를 박았다. 무리키가 상대 수비와 경합해주면서 수비수의 머리 뒤로 튄 공을 예측하고 공간을 선점한 이강인이 오른발로 잡아챘다. 이강인은 곧장 문전을 향해 달리면서 상대 수비수가 달려들기 직전에 강한 왼발 슛으로 골키퍼와 포스트 사이 좁은 공간을 뚫었다. 상대 골키퍼는 손 하나 까딱 못 하고 얼음이 됐다. 지난 시즌 9월 레알 마드리드 방문 경기에서 만회골을 넣은 뒤
11개월 만에 리그 득점이다.
이강인의 득점 소식을 알리는 마요르카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마요르카 인스타그램 갈무리
이강인은 이날 활약을 인정받아 경기 최우수선수(Man of the Match)에 뽑혔다. 직전 2라운드 레알 베티스전에서는 특급 왼발 크로스로 무리키의 다이빙 헤더 동점골을 도왔다. 막판 절묘한 프리킥이 골대 상단을 맞고 나오기도 했다. 경기에 패했음에도 발군의 활약을 보여줬던 이강인은 당시 축구통계매체 <후스코어드닷컴>의 유럽 5대 리그 ‘이주의 팀’에 킬리안 음바페,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맹)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고, <소파스코어>의 리그 베스트11에도 뽑혔다.
아직 시즌 초지만 환골탈태라 할 만하다. 지난 시즌 이강인은 리그 30경기에 나서 1골2도움을 기록했다. 절반을 교체 출전했고 마요르카가 강등권 진창에서 허덕이던 리그 후반기에는 완전히 주전 경쟁에서 밀린 모습을 보였다. 전 소속팀 발렌시아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20살 이하 월드컵에서 골든볼(최우수선수)을 받은 이강인은 세계가 주목하는 유망주였으나, 프로팀에서는 기동력과 수비 가담에서 물음표를 지우지 못하면서 안정적인 신임을 받지 못해 왔다 .
<후스코어드닷컵> 유럽 5대 리그 이주의 팀. 누리집 갈무리
<소파스코어> 라 리가 2라운드 이주의 팀. 누리집 갈무리
올 시즌도 개막 전 이적설이 무성했던 이강인은 지난봄 소방수로 부임해 잔류를 이끈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 아래서 달라졌다. 프리시즌 5경기를 모두 뛰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간결한 움직임과 자유로운 위치 선정으로 전술적 약점을 지워냈다. 아기레 감독은 라요 바예카노전 승리 뒤 “이강인은 모든 면에서 더 나아졌다. 그는 팀에서 가장
재능있고 위협적인 선수”라고 칭찬했다. 스페인의 <아스>는 베티스전 뒤 “마침내 이강인의 내면에 깃든 위대한 선수의
잠재력이 발현되려는 것 같다”라고 평했다.
한국에서 가장 당당하게 빛났던 ‘재능’은 그간 자신을 억눌러온 빅리그의 벽을 비로소 넘어설 수 있을까. 이강인의 도전기는 다음 달 3일 지로나전으로 이어진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