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의 조규성이 16일 부산 아시아드경기장에서 열린 페루와 평가전에서 자신의 헤더가 골로 연결되지 않자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 한 골 뒤진 후반 33분, 오른쪽 터치라인에 붙은 채 이강인(마요르카)이 유려한 턴으로 수비 두 명을 벗겨냈다. 라인 밖으로 나가기 직전 공을 건져낸 이강인은 벼락같은 크로스를 뽑아냈고, 페널티 박스 정중앙에서 조규성(전북)이 기다렸다는 듯이 솟구쳤다. 헤더는 골대를 외면했다. 부산 아시아드경기장은 탄식 소리로 가득 찼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 가나전의 ‘그 장면’은 재현되지 않았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16일 부산 아시아드경기장에서 열린 페루와 평가전에서 0-1로 졌다. 이 패배로 한국의 페루전 상대전적은 1무 2패가 됐다. 1971년 0-4 패배와 2013년 0-0 무승부에 이어 이번에도 한국은 페루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페루는 아르헨티나와 더불어 한국이 이겨보지 못한 ‘유이’한 남미 팀이다.
겹겹이 쌓인 악재 속에 선발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대표팀 부동의 중앙 수비 듀오였던 김민재(나폴리)와 김영권(울산)이 각각 군사훈련과 부상으로 이탈했고, ‘캡틴’ 손흥민(토트넘)마저 스포츠 탈장 수술 여파로 벤치에 앉았다. 전날 클린스만 감독이 “아직 컨디션이 100%가 아니다”라고 밝혔던 손흥민은 이날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의 이강인이 16일 부산 아시아드경기장에서 열린 페루와 평가전에서 프리킥을 차고 있다. 연합뉴스
김승규(감바 오사카)가 주장 완장을 차고 수문장으로 나선 가운데 정승현(울산)과 박지수(포르티모넨스)가 중앙 수비 짝을 이뤘다. 좌우 풀백에는 이기제(수원)와 안현범(제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는 원두재(김천)가 섰고 황인범(올림피아코스), 이재성(마인츠), 이강인, 황희찬(울버햄프턴) 등 대표팀 주전 조가 가동된 가운데 오현규(셀틱)가 최전방에 섰다.
변화는 먼저 불안으로 돌아왔다. 페루의 적극적인 전방 압박에 대표팀은 중원에서 연달아 공을 잃으며 전반 4분 파올로 게레로(라싱 클루브), 8분 에디손 플로레스(우니베르시타리오) 등에게 초반부터 휘둘렸다. 결국 11분 게레로가 원투패스로 오른쪽부터 한국의 수비 조직력을 허문 뒤 왼쪽으로 내준 공을 브라이언 레이나(알리안사 리마)가 침착한 마무리로 연결하며 골망을 흔들었다.
실점 뒤 한국은 이강인을 중심으로 기세를 끌어올렸다. 이강인은 전반 27분 절묘한 원터치 침투 패스로 오현규에게 일대일 기회를 제공한 데 이어 32분 왼발 감아차기로 팀의 첫 유효슈팅을 기록하는 등 내내 번뜩이는 탈압박 드리블과 크로스 등을 선보였다. 후반 28분에는 황희찬의 크로스를 필살 헤더로 찍어내며 동점골을 노렸지만 페드로 가예세(올랜도 시티) 골키퍼를 뚫지 못했다.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의 오현규가 16일 부산 아시아드경기장에서 열린 페루와 평가전에서 골 찬스를 놓친 뒤 탄식하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18분 조규성, 홍현석(헨트), 40분 황의조, 나상호(이상 서울) 등을 차례로 투입하며 총공세에 나섰지만 끝내 결실을 보지 못했다. 한국은 이날 슈팅 13-7, 유효슈팅 4-1로 쉬지 않고 페루 문전을 위협했으나 마지막 한 끗이 모자랐다. 후반 추가시간 종료 휘슬이 불리자 이강인은 분한 듯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들지 못했다.
이날 패배로 이 경기 전까지 이어오던 부산 아시아드경기장 A매치 무패(8승1무) 기록도 깨졌다. ‘클린스만호’의 첫 승은 오는 20일 대전에서 열리는 엘살바도르전을 기약하게 됐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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