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올림픽축구대표 탈락 뒤 체력약점 보완·팀플레이 보강
정조국(22·FC서울)의 학창시절은 정말 ‘좋은 추억’으로만 가득했다. 서울 대신고 시절, 고교무대 득점왕을 휩쓸며 ‘초고교급 골잡이’로 떠오른 그에게 축구인들은 들뜬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3 시절인 2002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19살 이하) 우승을 이끌고, 이듬해 FC서울에 입단해 프로축구 신인상도 타는 등 탄탄대로였다.
잘 나가던 정조국은 2004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김호곤 감독의 올림픽대표팀에 뽑혔으나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하고 조재진 등에 밀려 결국 아테네에 가지 못했다. 축구를 시작한 뒤 남들보다 뒤로 처진 첫 경험이었다. “그땐 나 자신만 생각한 것 같아요. 들떠 있었고, 너무 일찍 주목을 받으니 자기개발보다 자만심에 빠지기도 했고요.” 정조국은 “화가 나기도 했고 부모님께 가장 부끄러웠다”며 “하지만 그때가 날 돌아보게 하는 반환점이 됐다”고 회고한다.
시련의 계절을 겪은 뒤 정조국은 프로무대에서 칼을 갈았고, 올해 들어 훨훨 날고 있다. 특히 ‘나홀로 플레이’를 버렸다. 근력을 키웠고, 드리블도 섬세하게 다듬었다. “올림픽 이후 사생활에서도 축구만을 생각했습니다. 독일월드컵 때도 자지않고 좋은 축구를 보려고 했어요. 내 포지션과 같은 티에리 앙리(프랑스)나 뤼트 판 니스텔로이(네덜란드)의 플레이를 유심히 봤죠.”
요즘 축구인들은 정조국이 많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체력이 약점으로 꼽혔으나, 이젠 전·후반 90분을 거뜬히 소화해낸다. 올해 프로축구 컵대회에서 FC서울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출전해 2골 3도움으로 활약하며 팀이 6년 만에 우승하는데 힘을 보탰다. 우승의 고비였던 7월15일 전북 현대와의 경기(4-1승)에서는 1골 2도움으로 단연 돋보였다. 지난 1일 축구협회(FA)컵 포항 스틸러스와의 16강전(3-1승)에서도 헤딩 결승골로 팀의 8강을 이끌었다.
정조국은 자신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팀 플레이를 생각합니다. 내가 골을 넣기보다 동료의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하죠. 그러다보니 더 움직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기회가 오더라구요.”
올초 ‘아드보카트호’ 해외전지훈련에 참가했지만, 독일월드컵 최종명단에 들지 못한 정조국은 최근 출범한 ‘핌 베어벡호’에서 태극마크도 되찾았다. “얼마전 (최)성국이형과 통화했는데, 형이 청소년대표 때처럼 발을 맞춰 그때의 좋은 모습을 되살려보자고 했어요. 대표팀에서 배우는 자세로 하다보면 (16일 대만과의 아시안컵 예선) 최종명단에 들 기회가 오겠죠.”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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