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환 프로축구연맹 회장(왼쪽)이 15일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2007 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호곤 축구협회 전무는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이번에만 협조해주면 다음엔 원칙대로 하겠다.” 곽정환 프로축구연맹 회장도 “크게 보자”고 했다. 한발 양보해주는 게 어떻겠냐는 뜻이었다. 단장들은 단호했다. ‘한번만, 한번만’ 하다가 여기까지 왔고, 또 물러서면 ‘다음에 이런 일이 재발한다’며 반기를 들었다. 1시간의 격론이 이어졌고, 곽 회장은 ‘거수 찬반’이 무의미하다는 걸 느꼈다. 단장들의 생각이 확고해서다.
15일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2007년 제1차 프로연맹 이사회. 바로 이 회의에서 14개 국내 프로축구 모든 구단이 협회의 대표팀 차출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구단들은 올림픽 대표팀의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대회(1월21~31일)에 선수들을 단 한명도 보내지 않기로 했다. 16일 오후 선수들을 불러모아 이날 밤 도하로 떠나려 했던 협회는 대회 참가조차 어려운 처지가 됐다.
참석한 단장들은 월드컵 같은 중요한 대회도 아닌 초청대회에 선수들을 데려가면, 프로팀 겨울 훈련에 차질이 생긴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했다. 매년 1~2월마다 대표팀에 선수들을 보내 정상 훈련이 힘들었다는 불만이 곪아 터진 것이다. 특히 단장들은 “대표팀 차출 규정을 새로 만들어놓고 왜 협회가 어기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초 협회와 연맹 쪽은 차출 갈등을 없애기 위해 대표팀 차출 규정을 같이 손질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친선대회에 선수들을 데려가려면, 협회가 프로팀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 단장들은 이 협의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대표팀 성적에 급급해 프로팀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을 더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협회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서운해했다. 김호곤 협회 전무는 “핌 베어벡 감독이 아시아경기대회 대표팀 선수들을 지난해 K리그 플레이오프에 뛸 수 있도록 배려할 때, 연맹이 카타르 대회 출전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원동 연맹 사무총장은 “플레이오프에 오른 4개 팀으로부터 협조의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전 구단의 양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협회는 15일 연맹 대의원 총회에서 차출을 다시 협조하기로 했다. 그러나 구단들의 의지가 완강해 번복될 여지는 적다. ‘프로팀이 건강해야 대표팀도 튼튼하다’는 목소리의 반격이 시작된 셈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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