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을 앞둔 4월, 축구대표팀과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 이동국은 벤치만 지켰고, 끝내 히딩크호에서 탈락했다.(왼쪽)/4경기 연속골로 K리그서 승승장구하던 2006년 4월5일. 이동국은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불의의 무릎부상을 당했고, 독일월드컵에도 나가지 못해 또한번 ‘비운의 스타’가 됐다.(오른쪽)
2002 월드컵대표팀 탈락
‘개동국 입대 축하’ 현수막
“난 게으른 천재가 아냐”
이악물고 훈련 또 훈련
‘개동국 입대 축하’ 현수막
“난 게으른 천재가 아냐”
이악물고 훈련 또 훈련
송호진 기자가 지켜본 이동국 “이동국은 좀 어때?”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물음엔 종종 비아냥이 섞여있습니다. 전 그저 이동국을 지켜본 몇가지 기억을 꺼내 말해줍니다. 2003년 5월. 이동국이 입대한 지 2개월 됐을 때의 일입니다.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 탈락과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동메달로 병역혜택을 날린 그는 경기장에서 ‘개동국의 입대를 축하한다’는 플래카드까지 봐야 했습니다. 팬과의 만남을 주선한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얘기했습니다. “한-일월드컵 때 경기도 보지 않고 친구와 여행을 다녔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욕을 하나 야속했지만…. 압니다. 앞만 보고 달리던 어린 시절에 비해 해이해졌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난 게으른 천재가 아니란 것을.” 2004년 7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찻잔을 놓고 다시 마주했습니다. 그는 2001년 독일 분데스리가 브레멘에 진출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아픔을 끄집어 냈습니다. 부상이 있었는데도, 어린 나이에 2000 아시안컵 등 대표팀에 불려다니다 보니 고장난 무릎을 제대로 고치지 못해 독일에서 적응하지 못한 게 아쉬웠답니다. 그러면서도 채찍질은 자신에게 향했습니다. “주변에서 나에게 나쁜 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이제야 나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됐어요. 그땐 유럽을 쉽게 봤어요. 착실히 준비했어야 했는데….”
이동국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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