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전 페널티킥 자책…뒷머리 잘라
‘견고한 포백’ 중책 짊어지고 “초심으로”
‘견고한 포백’ 중책 짊어지고 “초심으로”
사자 갈깃머리 같던 뒷머리가 갑자기 짧아졌다. “그냥 더워서요.” 김진규(22·전남 드래곤즈)는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11일)전 다음날 다른 호텔 가서 잘랐어요. 확 자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경기를 못해서….”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오)범석이가 상대선수한테 페널티킥을 허용했을 때 실수가 저부터 시작됐거든요.” 후반 32분 김진규가 공을 빼앗겼고, 이 공을 전해받은 사우디 선수를 오범석이 벌칙구역에서 밀었다는 이유로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그게 1-1 동점골이 됐다. “마지막에 힘이 떨어져서 역습을 허용했어요. 라커룸으로 들어오면서 너무 미안했죠. 내 잘못인데 (국내팬들한테) 수비수들이 욕을 많이 먹는 것 같더라고요.” 그는 다소 얌전해진 머리스타일이 프로 1년차 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각오를 한거죠.”
축구선수가 중앙수비수로 살아간다는 것. 뒤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지만 한번 실수는 날카로운 비수가 돼 그들에게 쏜살같이 날아온다. “모든 포지션이 다 힘들겠지만 수비수는 백번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욕을 먹는 자리니까요.”
그러나 그는 그 무거운 부담을 짊어지고 한국 축구 주전 중앙수비수로 발돋움했다. 특히 아시안컵은 그에게 특별한 대회다. 그는 19살이던 2004 아시안컵을 시작으로 대표팀 수비수로 뛰기 시작했다. 김태영(은퇴)이 부상으로 빠진 본선 2차전부터 스리백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국가대표로 처음 뛸 때라 공이 나한테 날아오기만 해도 무서울 정도였다”고 했다. 더구나 이란과 8강전에서 벤치에 있던 상대 선수들이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을 참다 못해 그라운드에서 가운뎃 손가락을 치켜든 장면이 하필 중계화면에 잡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는 귀국길에서 “한국에서 난리났죠?”라고 취재진에 걱정스레 묻던 어린 선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리고 있는 2007 아시안컵. 이제 핌 베어벡 감독의 고민은 김진규가 아니라, 그의 짝궁을 누구로 하느냐에 쏠리고 있다. 그만큼 김진규 입지가 확고해졌다는 뜻이다. 그는 “2004년보다 좀 여유가 생긴 것은 있다”고 했다.
이회택 축구협회 부회장은 훈련장에서 김진규 모습을 지켜보다 “볼을 연결하는 능력은 좀더 좋아질테고, 몸싸움이나 투지 하나는 굉장히 뛰어난 선수”라고 칭찬했다. 욕이 쏟아지는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김진규. 이번 아시안컵에서 그는 또 몇 뼘쯤 성장할까?
자카르타/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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