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아시안컵 8강 대진표
22일 이란만 넘으면 수월
베트남이나 이라크 만나
베트남이나 이라크 만나
89분01초. 벤치로 시선을 돌리니 핌 베어벡 감독이 대기심에게 다가가 ‘왜 교체를 빨리 안시키느냐’고 다그치고 있었다. 그러곤 오장은(울산 현대) 등을 떠밀어 교체 대기지점에 서게 했다. 한국이 1-0으로 앞서 있었지만, 인도네시아한테 막판에 한골을 내주면 조별리그 탈락도 할 수 있던 상황. 선수교체로 시간을 끌고 싶었던 베어벡 모습은 그가 얼마나 초조해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18일 천신만고 끝에 2007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행을 확정지은 ‘베어벡호’. 한숨을 돌리는가 싶었는데 한국과 악연을 맺어온 중동 강호 이란이 8강에서 기다리고 있다. D조 2위 한국 축구대표팀은 22일 밤 8시20분(한국시각) 말레이시아 쿠알아룸푸르 부킷자릴경기장에서 C조 1위 이란과 4강 티켓을 놓고 다툰다. 대표팀은 19일 인도네시아를 떠나 말레이시아 땅을 밟았다. 베어벡 감독은 “우린 다시 (결승전이 열리는) 인도네시아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기막힌 만남은 또 뭔가? 이란과는 1996년 대회부터 4회 연속 8강에서 맞붙게 됐다. 96년은 한국 선수들이 박종환 감독의 스파르타 훈련방식에 반기를 품고 태업성 플레이를 펼쳤다는 의혹 속에 2-6 참패를 당했다. 2000년 8강에선 한국이 김상식의 한 골과 연장전에서 20살이던 이동국(미들즈브러)의 결승골로 2-1로 설욕했으나, 2004년 8강에선 3-4로 무릎을 꿇었다. 당시 조 본프레레 감독은 “3골을 넣으면 이겨야 하는데 왜 졌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비수 이민성(FC서울)은 ‘노쇠화한 수비진 교체하라’는 여론이 들끓자 스스로 대표팀 옷을 벗는 등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축구협회는 김남표 기술위원에게 C조 전 경기를 현장에서 보게 하며 전력분석을 맡겼다. 이란 경기 비디오 자료도 베어벡 감독에게 넘겨진다.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중앙공격수 바히드 하세미안과 (2004년 8강 한국전에서 해트트릭을 한) 알리 카리미 등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이란은 이번 대회에서 선제골을 내줘도 승부를 뒤집는 저력을 보이며 무패(2승1무)행진을 하고 있다.
베어벡 감독은 “이란이 전통적으로 강팀이지만 매 경기 결승전이라 생각하고 임하겠다”고 했다. 이천수(울산)는 “한국 축구가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란만 넘으면 한국이 역대전적에서 크게 앞서는 이라크-베트남 두팀 승자와 4강전을 치른다. 47년 만의 우승? 그 길에 또 이란이 발을 걸려 한다.
쿠알라룸푸르/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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