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맨 앞) 이천수 등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5일 아시안컵 이라크와의 4강전 승부차기에서 3-4로 져 결승진출에 실패한 뒤 침통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걸어나오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연합
마지막만이라도…
이라크와 4강전에서 진 뒤 선수들은 인터뷰장에서 말 없이 빠져나갔다. 47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컵을 안으면 선수 병역혜택을 위한 여론몰이까지 생각한 축구협회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2경기 연속 120분씩 뛴 한 수비수는 “손 들고 나오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3·4위전이고 뭐고 귀국하고 싶을 텐데 상대가 일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충할 수도 없는 라이벌전. 다급한 쪽은 선수보다 핌 베어벡 감독이다. 애초 내건 4강 이상 목표를 이뤘는데도 5경기 3골의 단조로운 경기운영 탓인지 실망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자칫 한-일전마저 진다면 입지가 더 좁아질 수 있다. 가장 최근 두 나라 대표팀간 경기인 2005년 동아시아대회에서 한국이 0-1로 진 뒤 당시 조 본프레레 한국 감독이 지휘봉을 놓았다. 두 나라가 68차례(38승18무12패로 한국 우세) 싸운 직후 한국은 4명, 일본은 10명 감독이 패배 멍에를 지고 옷을 벗었다. 베어벡 감독이 초조한 이유다. 28일(밤 9시35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팔렘방 자카바링 경기장에서 열리는 2007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3·4위전. 47년 우승(한국)과 대회 3연패(일본)를 놓친 두 나라가 만났다. 보스니아 출신 이바차 오심 감독은 “토끼가 맹수에 물렸다면 빨리 뛰지 못한 토끼 잘못이다” “죽을 정도로 달려도 죽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체력을 중시하면서 “공과 사람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며 패스 조직력을 강조한다. 실제로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짧은 패스로 중앙에서 기회를 만드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그렇게 5경기에서 10골을 뽑았다. 대회 득점선두 다카하라 나오히로(4골), 프리킥이 좋은 나카무라 순스케 등을 조심해야 한다. 8강 승부차기에서 모두 2골을 막은 이운재와 일본 수문장 가와구치 요시카쓰 방어 대결도 볼 만하다. 오심 감독은 사우디와 4강전에서 2-3으로 진 뒤 3·4위전에 “새 얼굴을 투입하겠다”고 했으나, 한-일전 무게감 탓에 큰 폭의 변화는 힘들 듯 보인다. 베어벡 감독은 자신이 추구한 ‘생각하는 축구’가 뭔지 마지막 경기에서라도 보여줘야 한다. 경기는 지고 이길 수 있으나, ‘베어벡 축구’를 보며 뭉클한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은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빈 공간으로 부지런히 찾아가 고립된 동료의 공을 받고, 다른 동료가 또 공간으로 달려가 패스 길을 트는 희생과 협업의 축구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아시아축구연맹은 3위까지 2011년 아시안컵 본선 자동출전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3위가 중요해진 이유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