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18·FC서울)
키 187㎝. 지금도 자라는 중이란다. 이제 겨우 18살. 이 정도 체격이면 공격수만 하겠다고 우길 법도 하다. 실제로 기성용(FC서울)은 초등학교 6학년까지 골잡이였다. 12살 때 소년체전 팀 우승과 함께 중학생들을 제치고 축구종목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이동국 박지성 등이 어릴 때 받았던 ‘차범근축구대상’도 손에 쥐었다. 포지션을 궂은 일 담당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스스로 바꾼 건 13살 때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4년간 축구유학을 하면서부터. “밑에 처져서 수비도 하고 공 배급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축구에서 일찍이 본 적 없는 장신 수비형 미드필더가 탄생한 것이다. 2003년까지 고교 축구감독을 하면서 김태영 윤정환 고종수 등을 배출한 아버지 기영옥(광양제철고 체육교사)씨는 “수비 요령을 좀 더 갖춰야 한다. 슈팅 강도는 좋으나 정확도가 약간 떨어진다”고 했다. ‘호남축구 대부’라는 아버지는 대를 이어 축구하는 아들에 대한 평가가 박했다. 그 말은 겸손에 가깝다.
아들은 20살 청소년대표, 23살 이하 올림픽대표를 줄줄이 꿰차고 있다. 핌 베어벡 전 감독이 소문을 듣고 FC서울 훈련장에 찾아가 기성용을 본 뒤 지난 3월 국가대표까지 달아줬다. 기성용은 지난 8일 바레인과의 2008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 2차전에서 상대 공격을 끊고, 과감하게 전방으로 찔러주는 패스로 1-0 승리의 밑돌을 놨다. 1985년생 주축인 올림픽팀에서 그는 형들보다 3~4살이나 어리다. 소속팀 FC서울에서도 막내인데 주전이다. 눈높은 셰놀 귀네슈 감독은 왜 이 어리고 경험 적은 선수를 중용할까. 이영진 코치는 “경기의 질이 좋다”고 했다.
“한 경기 뛰고 회복하는 능력과 지구력이 약간 떨어진다. 어리니까….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러곤 칭찬이 이어졌다. “체격조건이 좋다. 국내에서 보기드문 유럽형이다. 터프하다. 남을 해코지하는 게 아니라 정당한 몸싸움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전방 상황을 읽는) 시야가 좋고 경기운영 능력이 있다. 센스를 갖춘 것이다. 공격 능력이 있어 전방으로 큰 패스, 긴 패스를 정확하게 한다. 감독이 주전으로 쓸 수 밖에없는 이유다.”
요즘 한국축구가 측면에 치우친 공격을 주로 하는데, 공·수 중간에서 여러 방향으로 패스할 줄 아는 이 선수가 잘 성장할 경우 한국 공격의 다양성이 생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성용이 잉글랜드대표팀 수비형 미드필더 스티븐 제라드(리버풀)를 좋아해 ‘기라드’란 별명이 생겼다. 아버지가 “주변에 휩쓸려 엄한 길로 가지 않았으면 한다”며 걱정하는 이 기대주, 기억하시라 18살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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