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스타들이 빚어낸 기술축구의 위대한 승리였다. 승리의 주역인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아스널)는 “아름다운 축구의 승리였다”고 했다. 실제 4년 전 유로 2004 때, 오토 레하겔 감독의 그리스가 조직력과 견고한 수비를 앞세워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우승했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전차군단’ 독일을 1-0으로 잠재우고 44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른 ‘무적함대’ 스페인. 그 중심에는, 빠르면서 현란한 기술과 정교한 패싱능력까지 보유한 사비 에르난데스(FC바르셀로나)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파브레가스 등 세 테크니션이 있었다. 사비는 이날 결승전에서 중원을 휘저으며 무려 62개의 패스를 만들어냈고, 성공률도 87%에 이르렀을 정도로 플레이메이커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골잡이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의 결승골도 그의 발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30일 새벽(한국시각) 오스트리아 비엔나 에른스트하펠 슈타디온에서 열린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8) 결승전. 스페인이 전반 33분 터진 토레스의 천금같은 결승골로 ‘전차군단’ 독일을 1-0으로 누르고 우승상금 750만유로(124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스페인으로서는 1964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 우승(옛 소련에 2-1 승리) 이후 44년 만에 맛보는 감격적인 우승이었다. 결승전에 부상으로 나오지 못한 스페인 골잡이 다비드 비야(27·발렌시아)가 4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사비는 이날 독일 일자수비를 일거에 허무는 절묘한 패스로 결정적인 골 기회를 만들었고, 2007~2008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해 24골을 터뜨리며 성공시대를 연 토레스는 상대 왼쪽윙백 필립 람(바이에른 뮌헨)과의 치열한 몸싸움 끝에 골을 성공시켰다. 그의 순간 질주에 독일 39살 베테랑 ‘거미손’ 옌스 레만(아스널)도 손을 쓰지 못했다.
세계 정상급 실력을 보유하고도 1964년 이후 유럽축구선수권은 물론 월드컵 우승과 인연이 없던 스페인이었지만, 이번엔 사비와 이니에스타, 다비드 실바(발렌시아), 마르코스 세나(발렌시아), 세르히오 라모스(레알 마드리드) 등 대부분 프리메라리가에서 활약하는 스타들의 정교한 ‘기술축구’를 앞세워 무패의 기록으로 정상에 올랐다.
반면, 통산 3회 우승(1972, 1980, 1996년)에 빛나는 독일은 이날 카를레스 푸욜(FC바르셀로나)이 지휘하는 스페인의 견고한 수비에 막혀 정상등극에 실패했고, 스페인이 앙리들로네컵에 입맞추는 모습을 허탈하게 지켜봐야 했다.
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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