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무 선임기자
김경무 선임기자의 월드컵 이야기 / 월드컵 본선을 앞둔 각국 감독들은, 으레 언론에 저마다 한마디씩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기 마련입니다.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 2001년 1월,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대표팀 사령탑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런 말로 야심찬 포부를 밝혔습니다. 20일 허정무 감독도 진품 월드컵 트로피 옆에서 “월드컵에서 사고 칠 준비를 끝냈다”는 멘트를 날렸습니다.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16강을 넘어 8강까지도 바라보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나이지리아가 최근 월드컵 예비엔트리(44명)를 발표했는데, 매우 낯익은 이름이 눈길을 사로잡더군요. 34살 노장 은완쿼 카누(포츠머스)입니다. 카누가 누굽니까?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결승전 때, 브라질의 수비를 완전히 농락하는 골을 터뜨리며 ‘슈퍼이글스’ 나이지리아의 우승을 견인했던 주인공 아닙니까. 벌써 14년 전 일인데, 그가 남아공월드컵에 나올 수도 있다고 하니,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모양입니다. 카누는 전성기에는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골잡이로 맹위를 떨치며 리그 2회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1m96의 큰 키이지만, 볼키핑력과 순간 움직임이 빨라 문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골결정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20개 팀 중 꼴찌로 처져 있는 포츠머스에서 유쾌하지 못한 선수 생활의 끝을 보내고 있습니다. 리그 23경기 출전(17경기는 교체출전)에 고작 2골. 스웨덴 출신 라르스 라예르베크(61) 나이지리아 감독이 그런 카누를 예비명단에 넣은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어찌 보면 아직 믿을 만한 스트라이커가 부족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다른 골잡이로는 한때 이동국의 미들즈브러 동료였던 아예그베니 야쿠부(에버턴)가 있는데, 그도 이제 28살로 한창 전성기가 지났습니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22경기(14경기는 교체출장) 5골 1도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중인 오바페미 마틴스(26·볼프스부르크)도 있지만, 인테르밀란 시절 ‘텀블링 골뒤풀이’를 선보이며 화려하게 빛을 발했던 그도 이젠 그다지 파괴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여담이지만 나이지리아는 아직도 집안 정리가 잘 안돼 있습니다. ‘국내파’ 샤이부 아모두 감독이 201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성적 부진(3위)을 이유로 경질된 뒤, 우여곡절 끝에 바통을 이어받은 라예르베크 감독이 아직 선수단과 상견례도 하지 못했다네요. 그래서 28일과 29일 영국 런던에서 카누 등 선수들과 처음 만나고, 다음달 15일에야 트레이닝 캠프에서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다는군요. 한국에는 공교롭게도 카누와 동갑내기인 베테랑 골잡이 안정환(34·다롄 스더)이 있습니다. 카누와 함께 그의 남아공행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29일 예비엔트리 30명을 발표할 예정인데, 안정환의 컨디션 최종점검을 위해 정해성 수석코치를 중국 창사로 급파하기로 했습니다. 안정환은 25일 창사 진더와의 중국 프로축구 원정경기에서 뭔가 보여줘야 ‘허심’을 사로잡고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란 꿈을 이루게 됩니다.
카누와 안정환. 두 동갑내기 노장이 6월 남아공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한 경기장에서 둘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을까요.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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