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무 선임기자의 스포츠오디세이 /
최근 정몽준(60)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의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5선 도전 실패로 향후 한국 축구 외교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16년 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피파 부회장 겸 집행위원으로 큰 공적을 남긴 그가 퇴장하고 나니, 당장 그의 리더십이나 국제축구계에서의 파워를 이어갈 인사가 전무한 한국 축구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정 명예회장은 이번 선거에서 45표 중 20표를 얻어 25표를 얻은 요르단 왕자에게 예상 밖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호시탐탐 피파 회장 자리까지 노리던 그가 권력의 끈을 놓게 됐으니, 개인은 물론 한국 축구계로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5표 차이가 큰 것 같지만, 사실 3표만 더 끌어왔으면 이길 수 있었다는 얘기니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낙선 이유는 뭘까요. 선거 현장에 다녀왔던 축구계 관계자는 “중국, 일본, 북한은 물론 대만, 홍콩, 마카오, 몽골 등 동아시아 쪽에서 도와주지 않은 것 같다. 또 축구외교는 돈인데, 그게 패인인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더군요. 한국 잘되는 꼴이 배가 아픈 이웃나라들이 정 명예회장에게 등을 돌렸고, 카타르 손을 들어준 지난해 12월 초 피파 집행위원회의 2022 월드컵 개최지 결정에 이어 이번에도 중동 ‘오일머니’ 위력이 대단했다는 해석입니다. 이제 아시아축구 행정의 헤게모니는 완전히 중동 쪽으로 넘어간 양상입니다. 경기력에서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고 있는 한국 축구가 이번 일을 계기로 축구 행정이나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무엇보다 전문성과 어학능력 등을 두루 겸비한 고급인력 영입 및 발굴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2008년 초 출범한 경기인 출신 조중연 회장 체제의 축구협회를 보면 아직 그런 노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조 회장은 취임 초 ‘축구계 대화합’을 내세우며 능력 있는 인사의 기용을 약속했으나, 가시적인 조치는 지금껏 보여준 게 거의 없습니다. 스스로 최고경영자(CEO)형 회장, 실무형 회장임을 자처하면서 내부행정을 총괄하고 있고, 축구인 출신을 협회 주요 자리에 고집하고 있습니다. 외부 채용을 통해 충원하겠다고 한 사무총장 자리도 없앴고, 축구인 출신이 전무이사를 맡아 사무총장 역할까지 겸하게 하고 있습니다. 국제업무도 역시 축구인에게 총책임을 지게 하고 있습니다.
1993~2008년 지속된 정몽준 회장 체제의 종식 뒤 축구협회 행정이 순수 경기인에게 넘어갔으나, 권력은 회장 측근 경기인들에게 쏠려 있고 반대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은 여전히 재야에 파묻혀 있습니다. 조 회장 임기는 앞으로 2년 남았습니다. 한국 축구의 대외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그의 전향적 자세와 조치를 기대해봅니다.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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