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사령탑에서 경질된 조광래 감독(오른쪽)이 선수 선발에 외압이 있었음을 26일 폭로했다. 경질 직후인 지난 9일 기자회견 모습.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조 “특정선수 발탁 요구…거부하자 분위기 달라져”
축구협 “수비수 한명 차출 요구해와”…회의록 공개
축구협 “수비수 한명 차출 요구해와”…회의록 공개
“축구협회 수뇌부 3명이 똑같이 한 선수의 대표팀 선발을 요청했다. 상부 이야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었다. 부담스러웠다.”(조광래)
“조광래 감독이 기술위원회에 참석해 수비수 한명을 추천해달라고 먼저 요청했다. 그래서 ㅇ 선수를 추천한 것이지, 외압은 아니다.”(축구협회)
지난 8일 축구대표팀 사령탑에서 전격 해임된 조광래(57) 감독이 11월 중동 원정에 앞서 ‘축구협회 수뇌부의 특정선수 선발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자, 축구협회가 기술위원회 회의록까지 공개하며 반박하고 나서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조 감독은 26일 낮 서울 강남 한 호텔에서 몇몇 스포츠신문과 한 송년 공동 인터뷰에서, 지난달 아랍에미리트연합(11일)·레바논(15일)과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원정 4·5차전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축구협회 수뇌부가 특정선수 선발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표팀 감독이 외부 바람에 흔들린다면 더는 미래가 없다. 부끄러운 한국 축구의 자화상이지만 선수 선발에 외압이 존재했다”고 했다. 이 선수는 지난해까지 대표팀 수비수로 활약했던 ㅇ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감독은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는 “축구협회 수뇌부 요청을 받은 뒤 코치들과 논의도 했고, 소속팀 감독한테도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소속팀 감독은 ‘아직은 대표팀에서 뛸 컨디션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후 축구협회에서 대표팀을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비협조적이 됐다. 중동 원정 2연전에 앞서 기술위원회에 레바논과 쿠웨이트 경기의 분석을 공식적으로 요청했으나 기술위원장이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다”고 했다.
조 감독은 이런 사실 폭로에 대해 “최강희 감독이 다시 시작하는 데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감독으로 있을 때 나 자신도 그와 같은 선수 선발 압력이 부담스러웠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성공한 대표팀 사령탑이 되려면 협회 수뇌부가 전폭적인 힘을 실어줘야 하고, 감독은 외압에 흔들려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20년 이상 축구협회에서 일했으면, 이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줄도 알아야 한다”며 조중연 회장, 노흥섭·이회택 부회장 등 축구협회 수뇌부에 직격탄도 날렸다.
축구협회는 조 감독의 폭로에 대해 지난 10월17일 제7차 기술위원회(당시 위원장 이회택) 회의록을 공개하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당시 조 감독이 ‘차두리가 부상 당하고, 이영표도 은퇴한 상황에서 코칭스태프가 아무리 찾아봐도 쉽지 않다’며 황보관 당시 기술교육국장한테 측면수비수 한명의 차출을 요구했다”며 “이는 기술위원회 회의록에 기록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축구협회 수뇌부에서 남아공월드컵에서 뛰었던 ㅇ 선수를 추천한 것”이라고 했다. 이회택 당시 기술위원장도 “지난 8월 일본과의 친선전에서 0-3으로 패한 뒤 풀백이 없다고 먼저 조 감독이 얘기해왔다. 그래서 남아공월드컵을 다녀온 ㅇ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한 적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누가 조광래 감독한테 선수를 뽑아라 말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기술위원장을 하는 동안 한번도 누구를 뽑으라고 한 적이 없다. 5월에 조 감독이 올림픽대표 선수들을 다 뽑아가 그걸 얘기하다가 혼이 났는데 그 뒤에 내가 어떻게 선수를 추천하겠느냐”며 외압설을 부인했다.
한편 조중연 회장은 이날 각 언론·방송사 축구팀장 간담회에서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일본은 기술위원회 논의 없이 축구협회 회장이 직접 지쿠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 임명했다”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기술위원회는 축구 기술 분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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