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선수에 뽑힌 이근호가 29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시상식장에서 밝게 웃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별별스타] AFC 올해의 선수 이근호
2005년 인천에서 2군 설움…대구로 이적해 주전 발돋움
최고의 순간에 군 입대 앞둬…“프리미어리그서 뛰었으면”
자신의 축구인생에 정점을 찍는 자리.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시상식장에 나타난 그의 얼굴엔 해맑음이 넘쳐났다. 특유의 노랑머리 헤어스타일도 폼이 났다. “실감이 안 나요. 태어나서 가장 큰 상을 받게 돼 더욱 기쁩니다. 한국 축구로서는 21년 만에 이뤄진 일이라는 게 더욱 감회가 깊고요.” 29일 저녁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만다린오리엔탈호텔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애뉴얼 어워즈 2012’에서 ‘올해의 선수’ 영예를 안은 이근호(27·울산 현대)는 “내가 올해 그 정도 플레이를 했나?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 2군에서 아시아 최고 스타로 축구명문 인천 부평동중과 부평고를 거쳐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2군 선수로 프로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가 장차 아시아 최고 스타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2군에서 고교 최우수선수의 자존심은 구겨졌다. “2년차 때도 경기 5분 남기고 뛰고 그랬어요. 주전으로 거의 못 뛰었죠.” 그러나 2006년 기회를 잡았다. 20경기 7골 7도움으로 2군 리그 우승과 함께 최우수선수에 올랐고, 이를 발판으로 이듬해 대구FC로 이적해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2년간 57경기 23골 9도움. 이때 ‘태양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핌 베어벡 감독한테 발탁돼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팀에서도 주공격수로 뛰었다. 이후 일본 J리그 주빌로 이와타, 감바 오사카 등에서 맹활약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 엔트리 탈락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지난해 말 일본에서 울산 현대로 이적해 올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 많이 뛰는 ‘태양의 아들’ 초등학교 5학년 때 형을 따라 동네축구를 하다가 아저씨들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했다. 친구들은 육상부로 갔는데…. 어머니가 직접 교육청에 찾아가 축구팀을 알아봤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대표팀에서 활약한 하석주 현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우상. “어릴 적엔 하석주 감독님이 제일 잘 뛰는 것 같았어요. 황선홍(포항 스틸러스) 감독님도 좋아했고요.” 아시아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오른 힘은 무엇일까? 폭넓은 활동량과 스피드다. “챔피언스리그에 나간 것이 컸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에서 다른 선수에 비해 폭발적인 모습을 보였고, 활동량 많고 빠르게 뛰는 모습이 눈에 들지 않았나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원래 그랬어요.” ■ 월드컵 본선 골이 마지막 목표 다음달 6일 일본 도쿄에서 개막되는 2012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출전한 뒤 곧바로 상무에 입대해야 한다. 복무기간은 1년9개월. “축구 선수로서 최고 순간인데…. 사람인지라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지난해 한국 들어올 때부터 마음먹은 것입니다. 군대 가서 월드컵이 이어지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가지 못한 때문에, 2014 브라질월드컵을 향한 각오도 남다르다. “(2010년) 그때보다 확실히 실력은 나아졌어요. 요즘은 여유로워져 제가 하는 플레이에 자신감도 생겼어요. 그때를 돌이켜 보면 너무 아팠는데, 지나보면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월드컵 본선에 출전해 골 한번 넣는 것은 마지막 목표입니다.”
제대하면 30살을 바라보지만 유럽무대 진출 꿈은 버리지 않고 있다. “최소 35살까지, 최대한 늦게까지 선수로 뛰고 싶어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가장 좋아하는데, 어느 팀이든 받아주는 팀만 있으면 가겠어요.” 좌절과 탈락을 딛고 일어서 아시아 최고선수가 된 이근호. 그의 화려한 비상은 또다시 이뤄질 것인가?
쿠알라룸푸르/글·사진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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