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최고 풀백 이영표 은퇴
상대 농락하는 드리블 사랑 받아
2002 월드컵 맹활약 뒤 유럽 진출
명문 에인트호번·토트넘서 전성기
28일 밴쿠버-콜로라도전 은퇴경기
상대 농락하는 드리블 사랑 받아
2002 월드컵 맹활약 뒤 유럽 진출
명문 에인트호번·토트넘서 전성기
28일 밴쿠버-콜로라도전 은퇴경기
지금으로부터 11년여 전인 2002년 6월18일 밤 대전월드컵경기장. 한국과 이탈리아의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골이 ‘초롱이’ 이영표 발끝에서 비롯된다. 두 팀이 1-1로 팽팽히 맞서던 연장 후반 12분. 이천수의 패스를 받은 이영표가 상대 진영 미드필드 왼쪽에서 오른발로 골문을 향해 공을 높게 감아올렸다. 순간 골지역 중앙에 있던 안정환이 이탈리아 중앙수비수 파올로 말디니를 따돌리고 절묘한 백헤딩슛으로 골든골을 작렬시켰고, 117분간의 혈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한국은 8강 진출 쾌거를 이뤘고, 이후 4강 신화까지 썼다. 안정환이라는 영웅의 탄생이 이영표라는 특급 조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순간이었다.
1999년 6월부터 2011년 초까지 한국 축구대표팀 부동의 왼쪽 풀백으로 활약했던 이영표(36)가 마침내 그라운드와의 아듀를 선언했다. 이영표의 소속팀인 미국메이저리그축구(MLS) 밴쿠버 화이트캡스는 23일(한국시각) 자체 누리집을 통해 그가 이번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다고 밝혔다. 이영표는 “선수생활을 통해 내가 어렸을 때 기대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 2000년 전후 ‘좌-영표 우-진섭’ 시대 이영표는 강원도 홍천 출신으로 고교축구 명문 안양공고를 거쳐 건국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워낙 영리하고 재치있는 플레이를 펼치는데다, 상대 수비를 농락하는 헛다리짚기 드리블까지 장기로 갖춰 축구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1999년 6월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했는데, 당시 대표팀은 수비에서는 좌-영표, 우-(박)진섭 전성시대였다. 둘 다 비교적 왜소하고 마른 체격이었지만 개인기가 좋고 두뇌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에 생긴 말이었다.
이영표는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팀 멤버로 뛰었고, 2002 한·일월드컵은 그의 축구인생이 꽃을 피운 시기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구사하는 3-4-3 시스템에서 왼쪽 측면 미드필더를 맡았는데,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3차전 때 멋진 왼쪽 측면 센터링으로 박지성의 1-0 결승골을 만들어낸 장면은 당시 팬들의 뇌리에 두고두고 남아 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때를 포함해 그가 기록한 2개 도움은 한국 축구가 4강 신화를 달성하는 데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 초 아시안컵을 마치고 태극마크를 반납하기까지 A매치에 127차례 출전했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136회), ‘거미손’ 이운재(132회)에 이은 한국 축구 역대 3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2006년 독일, 2010 남아공월드컵 등에도 출전했다. 그가 대표팀을 떠난 이후 한국 축구는 아직 그의 확실한 후계자를 찾지 못하며 애를 태우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성실하고 밝은 태도로도 다른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에인트호번의 “리 리 리…” 이영표는 건국대 졸업 뒤 안양 엘지(현 FC서울)에 입단해 K리그 무대를 누볐다. 한·일월드컵 이후 히딩크 감독을 따라 박지성과 함께 2003년 페에스베(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해 ‘코리안 듀오’로 빛을 발했다. 국내팬들에게는 미드필더 박지성의 인기가 좋았지만, 에인트호번의 홈구장 필립스 경기장에서는 이영표의 인기가 더 높았다. 홈 관중들은 이영표가 공을 잡을 때마다 “리(Lee) 리 리”를 연호했다.
이영표는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사우디아라비아 알힐랄 등을 거쳤고, 2011년 12월 밴쿠버에 새 둥지를 틀었다. 30대 중반을 넘은 나이에도 밴쿠버에서 지난 시즌 정규리그 한 경기를 빼고 전 경기를 소화할 정도로 감독의 신임을 받았다. 그런 활약으로 시즌을 마칠 때 ‘밴쿠버 올해의 선수’에 오르기도 했다. 올 시즌에도 정규리그 31경기 중 29경기에 출전했다. 2시즌 동안 1골과 10도움을 기록했다.
이영표는 28일 콜로라도와의 홈경기가 고별무대이다. 은퇴 경기에 대해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될 것이다. 훌륭한 팀에서 좋은 사람들과 선수생활을 마치는 멋진 시간이다. 밴쿠버가 영원히 나의 팀으로 마음속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마틴 레니 밴쿠버 감독은 이영표에 대해 “그라운드 안팎에서 무척 긍정적인 본보기가 되는 선수다. 그는 전설”이라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영표는 은퇴 이후 밴쿠버에 머물며 영어와 구단 행정을 배우고, 캐나다의 대학에서 스포츠마케팅 공부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