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28·서울시청)
여자축구리그 17일 개막하는데
성 정체성 의문 제기했던 감독 중
2명 사퇴…4명은 경기때 만나야
“정신적 충격서 헤어나지 못해”
소속팀 감독, 국외 진출도 검토
성 정체성 의문 제기했던 감독 중
2명 사퇴…4명은 경기때 만나야
“정신적 충격서 헤어나지 못해”
소속팀 감독, 국외 진출도 검토
“박은선이 아직도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컨디션이 안 올라와 죽겠습니다.”
여자축구 강호 서울시청의 서정호(55) 감독은 11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볼멘소리부터 꺼냈다. “은선이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체가 가라앉아 있어요. 리그 개막이 얼마 안 남았는데 큰일이네요. 올 시즌엔 꼴찌만 면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 2014 시즌 한국여자실업축구리그(WK리그) 개막이 다음주 월요일(17일)로 다가온 가운데, 리그 최고 스타이자 ‘풍운아’ 박은선(28·사진·서울시청)의 재기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은선은 지난 시즌 19골로 득점왕에 오르는 등 단연 군계일학의 활약을 펼쳤다. 그의 활약으로 서울시청은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랐으나 아쉽게 현대제철에 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성적에 죽고 살아야 하는 다른 팀 감독들의 어처구니없는 단체행동이 박은선의 길을 가로막았다. 180cm·74㎏의 당당한 몸집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득점력까지 갖춘 그의 활약이 자신들의 팀을 옥죄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서울시청을 제외한 6개 실업팀 감독들은 지난해 11월 그의 성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감독들은 그의 성별 검사까지 요구하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2014 시즌을 보이콧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서를 한국여자축구연맹에 제출해 물의를 빚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인권침해라는 비판이 들끓었고, 몇몇 감독은 물러났다. 급기야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박은선에 대한 성별 논란을 제기한 것은 여성의 인격을 침해하는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가시적인 후속 조처는 나오지 않아 박은선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서정호 감독은 “그 일이 터지고 나도 힘든데 은선이는 오죽하겠느냐? 시간이 지나면서 좀 나아졌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컨디션이 60~70%밖에 올라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은선은 하루 3~4시간의 훈련을 소화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멘털이 무너진 상황에서 힘겹게 운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11월 단체행동에 참여했던 6명의 감독 중 4명과 다시 운동장에서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올 시즌 여자실업축구리그 미디어데이 행사 때에도 박은선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그러자 최인철(42) 현대제철 감독은 “박은선은 한국 여자축구를 이끌어갈 훌륭한 선수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 감독으로서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며 감독들을 대표해 사과했다. 마지못해 이런 위로의 말이 나왔지만 지난 5개월 동안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던 박은선을 정상으로 돌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청은 17일(저녁 7시) 강원도 화천종합운동장에서 전북 케이스포(KSPO·국민체육진흥공단)와 이번 시즌 1라운드를 앞두고 있다. 서정호 감독은 “악조건 속에 있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수의 도리인 만큼 박은선이 시즌 첫 경기에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경기는 박은선의 재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 무대이다.
서 감독은 국내 리그 적응이 힘들 경우 박은선의 해외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리그 진출 가능성은 당장은 낮다. 서 감독은 지난해 미국와 일본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왔지만 제시한 연봉 수준이 턱없이 낮아 이를 포기했다. 3만달러(3192만원)를 제시한 곳도 있었다. 상한액이 5000만원으로 묶여 있는 한국여자실업축구리그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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