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가 사라졌다. ‘빗장수비’(카테나치오)의 위용도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 이후 희미해진 지 오래다. 2006년은 이탈리아 축구의 희비가 엇갈린 해였다. 월드컵 우승 5일 만에 승부조작에 연루된 구단들이 2부리그 강등과 성적 박탈이라는 치욕적인 징계를 당했다. 프리메라리가(스페인), 프리미어리그(잉글랜드)와 함께 유럽 프로축구 3대리그로 통하던 세리에 에이(A)는 그렇게 ‘변방’으로 전락해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도르트문트의 합류로 20일 확정된 2013~2014 유럽 챔피언스리그 8강 명단에 이탈리아 구단은 한팀도 찾아볼 수 없다. 스페인 클럽이 세팀(FC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AT마드리드), 독일이 두팀(바이에른 뮌헨·도르트문트), 잉글랜드 두팀(맨유·첼시), 프랑스 소속이 한팀(파리 생제르망)이다. 2008~2009 시즌 이후 5년 만에 이탈리아 클럽이 8강전에서 사라졌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 나간 3개 팀 중 유벤투스와 나폴리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AC밀란은 16강전 상대 AT마드리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유벤투스·AC밀란·인테르밀란이 이끌던 이탈리아 프로리그는 스페인, 잉글랜드와 함께 유럽 축구의 3강이었다. 세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횟수는 12번으로 스페인(13회) 클럽에 이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12회)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결승전 진출 횟수로만 보면 스페인(22회), 잉글랜드(19회)보다 월등히 많은 26회에 이른다. AC밀란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9회)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7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0년대 최강 전력을 자랑하던 AC밀란은 1993~1994 시즌 결승전에서 FC바르셀로나를 4-0 누르며 굴욕을 안겼다. 가장 최근의 챔피언스리그 2연패 기록도 1990년 AC밀란이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 리그는 2006년 유벤투스를 비롯한 클럽들의 승부조작이 드러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관중이 줄어들자 구단들은 재정난에 빠졌고 이는 스타 선수들의 ‘탈출’을 초래했다. 이번 16강전에서 골을 넣은 사뮈엘 에토오(첼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파리 생제르망) 등은 2000년대 후반까지 이탈리아 리그를 떠났다. 조제 모리뉴 첼시 감독은 2010년 인테르밀란을 우승시킨 뒤 레알 마드리드로 옮겼다.
관중 감소로 인한 구단의 재정난, 스타들의 부재로 인한 경기력 저하가 악순환처럼 반복되면서 사실상 독일 분데스리가에 유럽 3대 리그 자리를 뺏겼다. 영국 <비비시>(BBC)는 지난 10일 “부정부패와 축구장 폭력, 수익 창출 미비 등 다방면에서 이탈리아 세리에 에이의 침체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대부분의 팀들이 구식 경기장을 빌려 쓰고 있는 형편이라 티켓 가격 다양화나 편의 시설 확충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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