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즈버리 참사 당시 사진
경기직전 관중 몰려 압사사고
사고난 뒤 입석 관중 사라져
사고난 뒤 입석 관중 사라져
12일 잉글랜드 축구는 평소보다 7분 늦게 킥오프를 했다. 프리미어리그뿐만 아니라 2부 리그인 챔피언십,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도 마찬가지였다. 양쪽 선수들은 평소보다 6분 늦은 시각까지 경기장에 입장했고 1분 동안 추모 묵념을 한 뒤 경기를 시작했다.
‘7분 킥오프’는 올해로 25주기를 맞은 ‘힐즈버러 참사’를 추모하기 위함이다. 1989년 4월15일 잉글랜드 셰필드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의 축구협회컵 준결승전이 열렸다. 열광적이기로 유명한 리버풀 서포터스 2만명 이상이 경기장을 찾았고, 경기 시작 20분 전에 5000여명의 팬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당시엔 지금과 달리 입석 관중이 많았는데 경기장을 관리하던 경찰은 출구로 사용하던 문을 개방해 몰려든 팬들을 경기장에 들여보냈다. 수천명의 팬들이 입석으로 향하는 좁은 터널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경기를 보기 위해 계속해서 앞사람들을 밀고 들어갔다.
당시 축구경기장엔 그라운드에 난입하는 관중을 막기 위해 관중석과 그라운드 사이에 철제 담장을 설치했다. 담장 앞에서 경기를 보려고 서 있던 관중들은 뒤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인파에 쓰러져갔다. 경기 시작 6분 뒤 일부 팬들이 담장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자 심판은 경기를 중단했다. 관중석에선 수많은 이들이 질식해 쓰러진 뒤였다.
축구사에 최악의 사고로 기록된 ‘힐즈버러 참사’로 인한 사망자는 96명, 부상자는 700명을 넘었다. 사망자의 30% 이상이 스무살이 안 된 미성년자들이었다.
힐즈버러 참사는 이후 많은 변화를 불렀다. 사고 이후로 경기장엔 입석 관중이 사라졌고 경기장 곳곳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됐으며 관중들의 신분증 검사는 더욱 강화했다. 리버풀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는 힐즈버러 참사 때 사촌을 잃은 유가족이기도 하다. 제라드는 지난 1월 유가족 단체에 9만6000파운드(1억6672만원)를 기부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선덜랜드와 에버턴 선수들이 12일(한국시각)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앞서 ‘힐즈버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힐즈버리 참사 당시 상황을 설명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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