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원정 첫 승리’는 이천수(33·사진·인천 유나이티드 FC)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첫 경기인 토고전 후반 8분 벌칙구역 밖에서 밀집된 공간을 뚫던 박지성이 반칙을 얻어냈다. 페널티 박스 오른쪽 모서리 부근에 공을 놓고 잔디를 고른 뒤, 이천수가 찬 프리킥은 그대로 반대편 모서리로 빨려 들어갔다. 한국과 토고 선수들이 얽혀 모두 8명이 벽을 세웠지만 그림같은 포물선을 그린 공이 마치 그 자리에 ‘골 약속’이라도 한 듯 왼쪽 골망 상단을 흔들었다.
이천수는 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원래 그 자리는 (이)을용이 형이 차는 곳인데 그날만큼은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어서 ‘내가 차겠다’고 말했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차는 순간 들어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짜릿하다”고 회상했다. 분위기를 잡은 한국은 결국 후반 27분 안정환의 결승골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월드컵 역사상 첫 원정 승리를 따냈다. 이천수는 “내 축구 인생에 최고의 명장면이다. 출전했던 모든 월드컵 경기 가운데 가장 잊을 수 없는 골이자 경기”라고 말했다.
이천수 선수
한국팀과 프리킥 골과의 인연도 깊다. 한국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허정무 이후 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서 박주영까지 일곱 대회 연속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이천수는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축구화를 신는 순간 월드컵을 꿈꿔야 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대회다. 나한테도 월드컵은 축구로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며 “대표팀 후배들이 브라질에 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좋은 결과로 팬들한테 희망과 감동을 전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홍석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