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선수들이 아직 유럽 빅리그에 진출하지 못한 유일한 포지션이 골키퍼다. 권정혁(인천 유나이티드)이 핀란드 1부리그에서 뛴 적이 있고,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서 5년째 주전으로 뛰는 김진현이 국외 진출 선수로 이름을 올린 게 전부다.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고 할 만큼 유럽 리그 정상급 선수들과 기량 차이를 드러내는 포지션이다.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은 이런 ‘약한 고리’를 그대로 노출했다.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 정성룡(수원)은 조별리그 분수령이 된 알제리전에서 골문 앞에서 슈팅 각도를 좁히지 못한 채 첫 골을 내줬고, 두번째 골도 코너킥 상황에서 낙하지점을 완전히 놓치면서 허무하게 허용했다. 모두 골키퍼로서 기본에 해당하는 과제들이다.
두 경기서 선발로 뛴 정성룡
문전 앞에서만 소극적 움직임
“공격수 기량 날로 발전하는데
경험부족, 세계흐름 못 따라가”
벨기에전서 7개 눈부신 선방
그나마 김승규에게 가능성 봐
소극적인 움직임이 수비력 전체를 약화시키는 원인을 낳기도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내놓은 선수 분석 결과를 보면, 정성룡은 대회 내내 위기 상황에서 골문에서 5.5m 거리의 페널티 에어리어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만났던 골키퍼 이고리 아킨페예프(러시아), 라이스 엠볼히(알제리), 티보 쿠르투아(벨기에)가 11m거리의 페널티 마크 부근까지 나오는 과감성으로 골문을 지킨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정성룡의 순간 최고속도 역시 시속 13.4㎞에 불과해 시속 20㎞대를 넘나드는 아킨페예프(24.2㎞), 엠볼히(22.0㎞), 쿠르투아(17.7㎞)와 큰 차이를 보였다. 공을 처리하는 데 시간이 그만큼 많이 걸려 골문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 것이다.
정성룡의 한 경기 패스 성공 횟수도 평균 11회로 다른 선수들의 16~18개와 큰 차이가 났다. ‘포백’을 쓰는 한국으로선 또 한명의 최후방 수비수 구실을 해야하는 골키퍼의 수비 비중이 너무 낮았다.
한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 2006년 독일월드컵까지 골문을 지킨 이운재(현 22살 이하 청소년대표팀 코치) 이후 전적으로 신뢰받는 골키퍼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번 대회에서 벨기에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선 김승규(울산)가 가능성을 보였다. 김승규는 월드컵 첫 출전 경기에서 뛰어난 순발력과 민첩성을 보이며 7개의 눈부신 선방을 기록했다. 외신들이 “대형 선수가 나타났다”고 평가할 만큼 수비 커버와 펀칭, 공중볼 장악 면에서도 돋보였다.
국내 골키퍼들의 기량이 세계 수준과 큰 차이가 없지만, 경험 부족으로 큰 경기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남 FC 김태진(37) 코치는 “국내 골키퍼들이 국외 정상급 공격수들과 만날 기회가 너무 드물다. 공격수들의 기량뿐 아니라 축구공 성능까지 나날이 좋아져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 신의손(54) 골키퍼 코치는 “한국 축구의 골키퍼 역량이 유럽과 비교해 지금은 다소 떨어지지만, 김승규 같은 선수들은 지금도 뛰어날 뿐 아니라 더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경험을 쌓을 여건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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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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