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왼쪽)
서글픈 한국 프로축구 현실…지상파 3사, 중계권 사놓고 생중계 외면
참 서글픈 한국 프로축구의 현실이다. 프로야구보다 인기가 못해서? 반드시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에스비에스(SBS) 등 지상파 3사는 텔레비전 중계권을 사고도 K리그 클래식 경기 생중계를 외면하고 있다. 광고, 즉 돈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차라리 프로야구 중계를 하거나, 인기드라마 재방송을 하는 게 낫다는 식이다. 케이블방송도 평일 저녁 또는 주말이나 일요일 오후 앞다퉈 프로야구 중계에만 열을 올린다. 프로축구 팬들로서는 경기장을 찾아가지 않고 방송을 통해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
어린이날인 지난 5일 경우를 보자. 지상파와 케이블방송까지 포함해 5개 방송사가 케이티(kt)-한화의 대전경기를 생중계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K리그 클래식 고참스타인 이동국(36·전북 현대)은 뿔이 난 듯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어린이날 축구 보고 싶은 어린이들은 어떡하라고”라는 글과 함께 “전파 낭비”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온라인상에서는 논란이 한창이다. 이날 K리그 클래식은 제주―울산, 포항―부산 등 2경기가 오후 2시 열렸지만, 한 경기도 생중계되지 않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15 시즌을 앞두고 지상파 3사와 텔레비전 중계권료 계약을 맺었다. 방송사들은 K리그 클래식 경기를 일정 부분 생중계하는 조건으로 각각 15억원씩 중계권료를 내기로 했다.
그러나 프로축구연맹에 따르면 에스비에스와 문화방송은 거의 중계를 하지 않고 있다. 연맹 관계자는 “주말이나 일요일 낮시간에 프로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것보다, 드라마를 재방영하는 것이 광고 수입이 더 된다는 판단에서 두 방송사가 중계권을 사고도 K리그 클래식 경기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두 방송사가 K리그 클래식 경기를 안 하고 2시간 남짓 다른 드라마 프로그램을 내보내도 3억원 정도의 광고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5억원의 중계권료를 포기해도 다른 것을 하는 것이 더 수익이 된다는 것이다. 방송사들이 이럴 수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도 있다. 광고주들이 광고 계약을 하면서 본방과 재방을 패키지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인 한국방송은 두 방송사와는 좀 다르다. 프로축구연맹에 따르면 월 2회, 많으면 올 시즌 최대 20회 K리그 클래식 경기를 생중계하기로 ‘두루뭉술 하게’ 계약을 맺었다. 16회는 기본적으로 생중계하기로 했다. 또한 저녁 9시에 K리그 관련 소식을 전해주기로 패키지 계약까지 맺었다. 그러나 프로축구연맹은 경기를 생중계할 때마다 1억원의 제작비를 한국방송에 지원해줘야 한다. 올해 20경기를 생중계하면 20억원이 다시 한국방송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프로축구연맹으로선 중계권을 팔았지만, 결국 5억원 손해를 보는 셈이다.
프로축구연맹이 이렇게 출혈을 감수하면서 텔레비전 중계권료 계약을 맺은 것은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연맹 관계자는 “미국 메이저리그 축구(MLS)도 출범 초기 메이저리그 야구, 남자프로농구(NBA) 등에 밀려 방송중계가 어렵게 되자 이런 방식을 썼다”며 “우리도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했다.
축구인들은 방송사의 이런 행태에 서운함을 표하면서도 프로축구계의 반성론도 제기했다. 한 축구인은 “축구인 입장에서 보면 한 방송이라도 어린이날 축구 중계를 해주면 좋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서운하다. 서글픈 프로축구 현실이다. 그러나 축구인들도 더 노력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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