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20살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이 24일 오전 전주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실시된 대표팀 회복훈련 중 여유를 보이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20살 이하 월드컵) 당시, ‘독사’ 박종환 한국팀 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 ‘지옥 훈련’을 시키며 결국 4강 신화를 이뤄냈다. 이는 아직까지도 한국 축구가 이뤄낸 값진 성과로 평가받는다. 해발 2240m 고지대 경기장에 대비해 선수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훈련을 시켰다. 신연호, 김종부, 이기근, 노인우, 김판근, 김종건 등 당시 신화의 주역들은 아직도 올드팬들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전반 14분 김종부의 선제골로 앞서 나가다 1-2로 역전패하고 결국 4위로 대회를 마감했지만, 준결승 고비만 넘겼다면 우승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뒤, ‘난놈’을 자처하는 신태용(47) 감독이 다시 4강 신화에 도전중이고, 조별리그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해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조 1위를 해도 16강전에서 조 3위에 질 수도 있다.” 지난 23일 저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살 이하(U-20) 월드컵 A조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를 2-1로 누르고 2연승을 올리며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 신 감독은 “아르헨티나가 다급해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세계적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걸 느껴 짜릿했다”면서도 중간에 조심스럽게 이렇게 얘기했다.
신 감독은 “우선 목표가 조별예선 2승1무였다. 80%는 다가가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잉글랜드전에서는 최소한 비기거나 이기겠다”고 했다. 잉글랜드는 1승1무로 한국에 이어 조 2위다. 한국을 잡으면 조 1위가 되기 때문에 이기려고 적극적으로 달려들 가능성이 높다.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를 3-0으로 완파할 정도로 공격력이 탄탄하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은 24일 오전 전주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열린 대표팀 회복훈련 때 기자들과 만나 “잉글랜드전에서 로테이션을 돌리겠다”며 ‘바르사 듀오’ 이승우(FC바르셀로나 후베닐A)와 백승호(FC바르셀로나B)를 쉬게 하겠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두 선수는 우리가 2연승 할 때 큰 힘을 보탰다. 백승호는 체력을 끌어올리려 많이 고생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올라왔다. 그렇지만 피로가 누적된 만큼 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승우와 백승호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때 후반 중반 이후 쥐가 나는 등 체력적인 부분에서 약점을 노출했다. 신 감독은 둘에 대해 “냉정하게 얘기하면 체력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다. 가지고 있는 기술이 빛을 보려면 체력이 더 올라가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승우(가운데) 등 20살 이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4일 오전 전주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실시된 회복훈련에서 신태용(오른쪽) 감독과 달리기로 몸을 풀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한국-잉글랜드의 조별리그 최종 3차전은 26일(저녁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신 감독이 ‘바르사 듀오’를 쉬게 한다고 했지만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을 기용해 어떻게 승리를 쟁취할지 준비할 것”이라며 여전히 필승 의지를 보였다. 그는 “막연히 경기에 못 뛴 선수의 사기 진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길 수 있고, 사고 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겠다. 또 어느 선수가 나가도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신 감독은 아르헨티나전 승리 뒤 “지금 선수단 분위기는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그는 또 아르헨티나의 후반 공세를 한 골로 막은 데 대해 “오늘같이 골을 먹지 않으면 ‘신태용 축구’의 수비가 상당히 강하다 할 것이다. 2골을 넣었으니 공격이 약하다는 소리도 못 할 것이다”라고 의기양양해했다.
한국이 A조 1위를 하면 31일(저녁 8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C, D, E조 3위 팀 중 한 팀(와일드카드)과 16강전을 치른다. 조 2위를 할 경우에는 C조 2위와 30일(저녁 8시) 천안종합운동장에서 격돌한다. 어느 것이 더 유리하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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