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 살리하미지치 바이에른 뮌헨 단장이 팬들에게 디트마르 호프를 비난하는 걸개를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진스하임/AP 연합뉴스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특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양 팀 선수들이 치열하게 맞붙는 대신 서로 공을 돌리며 시간을 보낸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사건은 1일(한국시각) 독일 진스하임 프리제로 아레나에서 열린 호펜하임과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일어났다. 뮌헨이 6-0으로 앞서던 후반 20분께 일부 뮌헨 팬들이 호펜하임 구단 최대 투자자 디트마르 호프(80)를 비난하는 걸개를 걸었다. 호프의 어머니까지 모욕하는 내용이었다. 구단 관계자와 선수들이 걸개를 내려주길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심은 경기를 중단했고, 경기 재개 뒤에도 양 팀 선수들은 약 15분 동안 공을 돌리며 사실상 경기를 거부했다.
그렇다면 팬들은 왜 이런 걸개를 걸었을까? 독일 팬들은 호프가 ‘50+1’ 정책을 무력화해 독일 축구의 정체성을 해친다고 생각한다. 독일 프로축구팀은 기본적으로 시민구단이다. 각 구단 팬들이 구단에 회비를 납부하고, 구단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도 한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투자자는 구단 지분의 49%까지만 소유할 수 있는데, 이를 ‘50+1’ 정책이라고 한다.
독일 축구 팬들이 1일(한국시각) 베를린에서 열린 2019∼2020 분데스리가 우니온 베를린과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호펜하임 최대 투자자 디트마르 호프를 비난하는 걸개를 펼치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그러나 최근 독일 축구의 이런 전통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2015년, 20년 이상 특정 팀을 지원한 개인이나 기업이 해당 구단을 소유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생겼고 디트마르 호프가 처음으로 이를 활용해 호펜하임 구단 지분의 96%를 차지했다.
독일 팬들을 이런 행동이 독일 축구의 민주적 전통을 해친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자신이 소비자가 아닌 구단의 일부라고 믿는다. 또한 이런 전통이 구단을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도록 돕고, 독일 축구를 지탱하는 기틀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50+1’ 정책을 반대하는 쪽은 이 정책이 기업의 투자를 막아 독일 축구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다른 리그처럼 독일도 축구팀의 기업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독일축구연맹(DFB)은 2018년 총의회에서 이 제도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에는 제도에 대한 유지 의견이 53%로 더 많았다. 이번 일로 ‘50+1’ 정책에 대한 토론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독일 축구가 공공성과 상업성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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