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한 팬이 맨유 홈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 앞에서 유럽슈퍼리그의 핵심 투자 기업인 제이피(JP) 모건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유럽슈퍼리그 출범이 사실상 무산됐다. 19일(한국시각)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등 12개 구단이 출범을 발표했고, 곧장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대부분의 팀이 3일 만에 꼬리를 내렸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회장이 이탈 구단에 법적 조처를 경고했지만, 대세는 거를 수 없을 듯 하다.
슈퍼리그는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히려 슈퍼리그는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축구의 상업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럽 축구 클럽들은 지역사회 노동자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사회주의 이념과 결합해 일종의 민중운동적 성격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유럽의 명문 구단들은 대부분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슈퍼리그 참여 팀만 하더라도 대부분 미국 기업가 등이 소유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유럽 구단들은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아시아 등 세계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현지 팬들 사이에선 이에 대한 불만이 컸다. 하지만 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구단들의 세계화 전략은 성공했다. 아시아에서도 밤을 새우며 챔피언스리그를 보고, 각 구단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의 숫자가 상당하다. 실제 국내에서도 프리미어리그가 K리그의 인기를 압도한다.
현지 팬들은 슈퍼리그 출범에 대해 “팬 없는 축구는 없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팬심’ 같은 추상적 말로는 이 문제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슈퍼리그는 기본적으로 글로벌 팬을 겨냥한 계획이다. 당장 국내의 해외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슈퍼리그 찬성 목소리가 꽤 크다. 이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세계적 강팀과 대결하는 걸 보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이들은 가짜 팬이고, 이들의 팬심은 잘못됐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아스널 팬들이 23일(현지시각) 아스널 홈 구장인 영국 런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앞에서 미국 기업가이자 아스널 구단주인 스탄 크론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간 끝없는 경쟁은 필연적이다. 스포츠 경기와 사뭇 다르게 자본 시장의 경쟁은 서로를 몰락시켜야 하는 싸움이다. 지금 구단들은 경기의 승리가 아닌, 시장에서 승리를 위해 천문학적인 이적료로 선수를 영입한다. 대회 성적에 중계권 수익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경쟁에 직면한 구단들이 연고지 수입으로만 팀을 운용할 순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슈퍼리그는 안정적인 고수익을 보장하고, 다른 경쟁자는 시장에서 탈락시킬 수 있는 대회다. 이 유혹을 언제까지 거부할 수 있을까.
구단들이 시장 논리에 포섭된 순간, 슈퍼리그는 예정된 미래였던 것과 다름없다. 독일 축구 팬들이 기업의 구단 소유를 금지하는 ‘50+1룰’을 고집하면서 팀을 시민구단으로 남기기 위해 애쓰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구단들이 슈퍼리그 불참 의사를 밝혔음에도, 팬들은 여전히 기업과 구단주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의 손에 넘어간 자신의 팀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슈퍼리그 논쟁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과연 팬들은 그들만의 ‘축구’를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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