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닷새 앞둔 15일(현지시간) 오전 카타르 도하 수크 와키프 인근 바닷가에 설치된 월드컵 개최 기념 조형물 앞에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22 카타르월드컵 개막까지 약 일주일을 앞둔 지난 14일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은 인천을 떠나 카타르 도하에 입성했다. 대표팀이 탑승한 항공기는 카타르항공의 QR859편. 월드컵 기간 카타르행을 기획한 많은 한국인이 이용하게 될 노선이다. 카타르항공 여객기는 탑승하는 순간부터 승객을 축제로 인도한다. 가령 기내 안전수칙을 설명하는 영상에서는 폴란드의 스트라이커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와 브라질의 전설 카푸가 등장해 산소호흡기와 구명조끼 착용법을 알려준다. 2019년부터 틀어온 영상이라고 한다.
좌석마다 설치된 태블릿에는 월드컵 세션이 새로 편성됐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 4강전에서 영국인들의 마음을 훔친 잉글랜드 폴 개스코인의 눈물부터 프랑스 신성 킬리안 음바페의 대관식이 된 2018 러시아월드컵 결승전 풀버전 다시보기까지, 축구팬이라면 10시간 비행시간이 모자랄 콘텐츠가 가득하다. 이 가운데 ‘월드컵 스토리’ 카테고리에는 19편의 피처 영상이 실려 있는데, 그 첫 화는 카타르가 개최지로 선정된 순간의 환희로부터 출발한다. 카타르의 축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피파(FIFA) 언커버드’(까발려진 피파)라는 제목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가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몸집을 불리는 동시에 국제정치의 검은 손으로 타락해온 피파의 속사정을 파헤치는 사회 고발물이다. 이 작품은 과도한 권력이 집중된 피파 집행위원회의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시스템이 월드컵을 매개로 몇몇 국가의 불온한 욕망과 만나 축구를 더럽혔다고 말한다. 아울러 그 오래된 구조적 병폐의 ‘독과’가 바로 2022 카타르월드컵이라고 지적한다.
카타르는 2010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탈법적인 로비 행위를 통해 피파 집행위원들의 표를 매수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2015년 피파의 중역들이 잇따라 구속됐으나, 카타르는 부인했고 여러 결정적 정황과 증거에도 개최지는 뒤집히지 않았다. 그렇게 2022년이 밝았다. ‘피파 언커버드’는 스포츠워싱 브로커나 다를 바 없게 된 피파의 오늘에 개탄하며 다시 카타르를 조망한다. 이 작품이 공개된 건 지난 9일, 2022 카타르월드컵 개막을 11일 앞둔 시점이다.
14일 인천에서 카타르 도하로 향하는 카타르항공 QR859편 여객기의 좌석 태블릿에 상영 중인 월드컵 특집 영상. 제프 블래터 전 피파 회장이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카타르를 선포하고 있다. 박강수 기자
한쪽에서는 비리와 협잡이 얼룩진 국제 사회의 불상사로, 다른 한쪽에서는 아랍 세계의 자긍심을 드높일 새로운 모멘텀으로 카타르월드컵을 평한다. 그러나 카타르의 바람과는 달리 월드컵은 세계의 중앙무대로 발돋움하는 지렛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카타르의 어둠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구실도 하고 말았다. 이제 사람들은 유치 과정의 적법성을 넘어 경기장 건설공사에서 숨진
6700여명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책임과 법령으로 성적지향을 처벌하는 국가적 후진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에 카타르의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군주는 “카타르가 어떠한 월드컵 개최국도 당한 바 없는 과도한 비판을 받고 있다”고 했고, 피파는 지난 4일 32개 월드컵 참가국에 “
축구에만 집중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잉글랜드 등 유럽 10개국 축구협회는 이틀 뒤 즉각 반발하며 “인권은 보편적이고 어디서나 적용된다”라고 되받았다. 64년 만에 월드컵 본선행을 일군 웨일스를 비롯해 축구팬들 사이 보이콧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출전을 거부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
축구를 보는 즐거움과 축구를 보는 불편함 사이, 묘한 균형 위에서 사상 초유의 11월 월드컵 킥오프 휘슬이 울리려 하고 있다.
도하/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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