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수문장 김승규(가운데)가 28일(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H조 가나와 경기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월드컵을 맞아 오랜만에 축구대표팀 경기를 시청하는 팬들에게는 이번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의아할 만한 점이 있다. 바로 한국 축구대표팀 수문장이다. 현재 한국 골문은 2018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에서 화려한 선방쇼를 펼쳤던 조현우(울산 현대) 대신 김승규(알샤밥)가 지키고 있다. 왜 파울루 벤투 감독은 조현우 대신 김승규를 월드컵 무대에 세웠을까?
가장 큰 이유는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빌드업 축구’ 때문이다. 벤투 감독은 그간 한국이 즐겨 써오던 수비에 치중한 뒤 역습을 노리는 전술 대신 많은 활동량과 패스를 바탕으로 공격 찬스를 만들어나가는 빌드업 축구를 추구해왔다. 특히 벤투는 우리 골대부터 시작해 공격을 전개하는 후방 빌드업을 중시한다. 이를 위해선 골키퍼가 선방 능력에 더해 발기술까지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발기술이 좋은 김승규가 벤투 감독 체제에선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이런 흐름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명장으로 꼽히는 페프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도 골키퍼 ‘발밑’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감독이다. 실제 과르디올라 감독은 2016년 맨체스터 시티에 부임한 뒤 뛰어난 선방 능력으로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전 수문장이던 조 하트 대신 발기술이 좋고 빌드업 능력이 탁월한 클라우디오 브라보를 바르셀로나에서 데려와 기용했다. 당시 조 하트가 맨체스터 시티의 ‘심장’으로 불렸던 만큼,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만큼 골키퍼 발기술이 전술에서 핵심적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김승규가 선방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김승규는 애초 데뷔 때부터 선방 능력이 좋은 골키퍼로 유명했다. 페널티킥 방어 능력이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2013년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뒤 어제 경기 포함 69경기를 치렀을 정도로 경험도 풍부하다. 애초 조현우가 신태용호 ‘깜짝 스타’로 등장한 2018년 전까지 김승규는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이기도 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당시 주전 골키퍼였던 한국 축구대표팀 조현우. 카잔/박종식 기자
실제 기록 면에서도 김승규는 지난 4년 동안 조현우보다 좋은 모습을 보였다. 김승규는 2018년 8월 벤투 감독 부임 뒤 A매치 34경기에 출전해 16골을 허용했다. 무실점 경기는 23개였다. 경기당 실점 0.47골. 무실점 경기 비율은 67%에 달한다. 이는 같은 기간 A매치 13경기에 나와 16골을 내주고 무실점 4경기를 기록해 경기당 실점 1.23골, 무실점 경기 비율 30%를 기록한 조현우보다 좋은 성적이다.
물론 두 골키퍼는 모두 내로라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벤투 감독은 조현우에게도 골키퍼 장갑을 맡기며 4년 동안 둘을 비교했다. 조현우(13경기)의 출전 비중은 김승규(34경기)의 약 40%에 달한다. 보통 주전 골키퍼 자리에는 변화를 주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조현우도 상대적으로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던 셈이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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