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전 양 팀의 패스맵. <마크스탯스> 트위터 갈무리
바둑에서는 “모양이 좋아야 바둑도 좋다”는 말을 쓴다. 내용이 우수한 대국은 포석부터 행마까지 바둑돌이 배치된 형태에서부터 드러난다는 의미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모양’이 좋은 축구가 경기력도 가져간다.
축구에서 쓰이는 인포그래픽 가운데 ‘패스맵’이라는 게 있다. 11명의 선수가 90분 동안 어떻게 게임을 풀어갔는지를 축약한 일종의 ‘빌드업 지도’다. 선수가 공을 터치한 평균 위치가 각각의 점으로 표시되고 점과 점 사이 화살표는 두 선수가 주고받은 패스를 나타낸다. 패스가 많을수록 선이 굵어진다. 볼 터치 횟수가 많은 선수는 점의 크기를 키우거나 색을 진하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정보들을 시각화하면 선수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온라인 축구 데이터 분석 사이트인 <마크스탯스>가 공개한 2022 카타르월드컵 패스맵을 보면 벤투호 역시 ‘모양이 좋은’ 축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지난
우루과이전(24일) 패스맵에서는 오른쪽 최상단 나상호(17번)부터 골키퍼 김승규(1번)까지 넓게 자리한 선수들 사이 화살표가 진하고 다방면으로 얽혀 있다. 반면 우루과이는 골키퍼는 물론 루이스 수아레스(9번), 다르윈 누녜스(11번)가 모두 고립되어 있고 선수들이 포진한 평균 공간도 좁은데다 화살표도 연하다. 그라운드도 적게 쓰고 패스도 많지 않았다는 의미다.
가나전 양 팀의 패스맵. <마크스탯스> 트위터 갈무리
가나전(28일)도 마찬가지다. 황인범(6번) 바로 아래까지 내려와 있는 조규성(9번)의 위치가 눈에 띄는 가운데 11명의 선수가 화살표로 빠짐없이 연결되어 있다. 이나키 윌리엄스(19번), 타리크 람프티(2번)와 골키퍼 로런스 아티지기가 화살표 없이 동떨어져 있고 화살표가 얇아 형태가 다소 옹색한 가나의 패스맵과는 다르다. 평소 패스맵을 즐겨 보는 축구팬들은 이번에 한국 대표팀의 패스맵을 보면서 빌드업 축구의 완성형이라고 평가되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구단 “맨체스터 시티한테서 보던 거다”라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데이터가 주는 놀라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마크스탯스>는 32개 참가국의 ‘공격 수준’을 평가해 줄 세우고자 좌표 평면 그래프를 만들었다. 가로축은 지난 조별리그 2라운드 동안 각 팀이 기록한 평균 ‘기대득점’(xG)을, 세로축은 평균 ‘위협창출’(Created Threat) 숫자를 의미한다. 복잡한 용어지만 단순하게 설명하면 가로축은 ‘얼마나 골에 가까운 슈팅을 많이 만들어냈느냐’를 뜻하고 세로축은 ‘기대득점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좋은 공격 작업(패스 등)을 했는가’를 뜻한다.
월드컵 출전 32개국의 지난 두 경기 동안 보여준 공격 작업의 질을 분석한 좌표 그래프. 한국(South Korea)은 브라질, 독일 등과 함께 우상단 쪽 선두 그룹에 자리한다. <마크스탯스> 트위터 갈무리
이
줄 세우기에서 한국은 기대득점 약 1.5점대, 위협창출 약 1.75점대로 그래프 우상단에 위치한다. 홀로 아득하게 동떨어져 선두에 있는 프랑스를 제외하면 한국은 스페인, 독일, 브라질, 크로아티아 같은 팀과 비슷한 위치에 있고 포르투갈, 잉글랜드, 일본, 벨기에, 아르헨티나 등 국가보다 몇 단계 위에 자리한다. 단 두 경기를 표본으로 삼은 정보이기 때문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지만 아직은 벤투호의 공격 빌드업 체계가 아르헨티나보다 낫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많은 데이터 분석이 축구의 결과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패스맵 모양이 아무리 예쁘게 뽑혀도 한국은 유효슛 3개를 때린 가나에 3실점을 하고 패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29일(현지시각) 기자회견에서 “(가나전의) 두번째 실점 과정에서 큰 실수가 나왔다”며
보완 과제를 구체적으로 짚어냈다. 아울러 그는 ‘포르투갈전 이후 벤투호의 이미지’에 대해 “결과만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평가받았으면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모양이 좋은 축구’에서 ‘골도 넣고 실점도 줄이는 축구’로, 한국은 포르투갈전에서 빌드업을 완성할 수 있을까. ‘16강 경우의 수’ 바깥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도하/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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