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프랑스의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경기가 열린 19일 새벽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8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큰 사진) 개성 있는 치장을 한 채 경기 상황에 따라 울기도 하고 환호하기도 하는 시민들의 표정이 다채롭다.(작은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꾸벅꾸벅 월요일’… 즐거운 후유증
사상 처음으로 전국에서 수십만명이 동이 트기 전부터 한국 축구를 응원한 19일은 무척이나 긴 하루였다. 노숙이나 출근길 혼란은 물론 화장실 이용을 위해 1시간씩 줄을 서는 등 갖가지 진풍경이 연출됐고, 극적인 무승부를 직접 지켜본 많은 시민들은 오전 내내 ‘수면 부족’의 즐거운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날 온종일 직장과 학교 등지에선 새벽잠을 설치며 ‘하나’가 됐던 퀭한 눈의 ‘붉은 악마’들은 한국-프랑스 전을 둘러싼 끝없는 얘기꽃을 피웠다. 한원준(35·회사원)씨는 “오전까지는 지난 새벽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아 동료들과 축구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오후부터는 슬슬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며 “점심식사를 포기하고 잠시 눈을 붙이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경기를 시청하지 않은 이들도 잠을 설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박선영(30·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씨는 “출근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작스런 윗집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잠이 깼다”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집집마다 응원소리가 계속 이어져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시티약국 하명희 약사는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약국에 찾아와 피로회복제를 찾는 직장인들이 많았다. 월요일부터 피로회복제가 많이 팔리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웃었다.
일부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을 늦추기도 했다. 오원균 서대전고등학교 교장은 “학생들이 마음껏 한국팀을 응원하고 등교할 수 있도록 1교시 수업시간을 1시간 늦췄다”며 “많은 학교들이 18일에 수업을 1시간 더 하고 19일 등교를 늦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18일 저녁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 등 전국 주요 도시의 길거리 응원 장소에는 모두 69만여명의 시민들이 밤을 지새운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몇몇 시민들은 집에서 챙겨 온 담요를 덮고 새벽 4시까지 불편한 잠을 청하기도 했고, 서울시청 주변에서는 화장실을 가려는 시민들이 1시간씩 줄을 서기도 했다.
토고와의 경기 때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쓰레기 더미와 과격한 행동도 대부분 사라졌다. 경찰청은 “서울 압구정동에서 일부 시민들이 차를 흔드는 등 과격한 모습을 보였지만, 토고전 응원에 대한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 난동과 무질서가 거의 모습을 감췄다”며 “시민들이 응원 뒤 자발적으로 청소에 나서 시청 앞 광장이나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등도 깨끗하게 정리됐다”고 말했다. 소방방재청은 이날 거리응원 과정에서 모두 67건의 사고로 70명이 다쳤지만 모두 가벼운 부상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오는 24일 새벽 4시에 열리는 스위스전에도 얼마나 많은 인파가 길거리 응원에 나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토요일이라 출근 부담도 없고, 16강 진출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더욱 높아져 거리응원 인파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여기에 이날은 각급 학교가 쉬는 ‘놀토’여서 가족 단위 거리응원 시민들도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기상청은 24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한 상태다. 때문에 이날의 길거리 응원 규모는 실제 비가 내릴지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신경수 서울지방경찰청 경비기획실장은 “휴일을 맞은 직장인들과 다음날 학교에 가지 않는 어린 학생들까지 길거리 응원에 나오면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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