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새벽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치며 월드컵 대표팀을 응원하던 한 여성이 경기 종료가 가까워지자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왼쪽) 스위스전의 아쉬운 패배를 뒤로하고 붉은 악마 응원단이 쓰레기를 모으며 본래의 일상을 시작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국표 ‘거리 월드컵’ 지구촌 곳곳에
빈약한 축제·문화인프라 보완 의미
자본언론·기업 지나친 상업화 눈살
빈약한 축제·문화인프라 보완 의미
자본언론·기업 지나친 상업화 눈살
6월은 뜨거웠다. 월드컵의 한 경기, 한 경기가 온 나라의 새벽을 폭발하는 듯한 열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2002년처럼 ‘거리 월드컵’은 전세계가 주목하는 ‘한류’가 됐다. 한바탕 축제로 승화시킨 시민의 열망은 또다시 역사의 한 장이 됐지만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월드컵’에 기댔던 광장의 축제는 끝나고, 어느덧, 축구 그 자체를 즐겨야 하는 시간으로 돌아왔다.
축제가 된 월드컵=세차례의 조별 리그 경기가 치러지는 동안,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482만명(토고전 218만명, 프랑스전 100만명)에 이른다. 특히 스위스전에는 새벽 4시 경기인데도 164만여명이 집밖으로 나섰다. 이날 밤샘 응원을 벌인 장진우(30·서울 응봉동)씨는 “동네별로 대동놀이가 있던 문화가 사라진 지 오랜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 4년마다 신명을 풀어놓을 축제의 장을 월드컵이 제공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13일 토고전 때 한껏 멋을 부리며 서울광장에 섰던 송하영(25·서울 성동구)씨는 “월드컵 때만큼 한국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때는 없다”며 “지고 이기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 자발적일 수는 없다. 기업과 방송사들이 잠실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광장 등을 각기 ‘점령’하며 기획한 각본의 힘도 컸기 때문이다. 특히 방송은 16강 진출 때 수천억원대의 광고 수익을 기대하며 24시간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등 월드컵에 ‘올인’했다. 김완 문화연대 활동가는 “방송은 스포츠 뉴스를 빼고 매일 5꼭지 이상의 월드컵 기사로 온 국민의 무비판적인 관심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축구광인 회사원 박성규(32·경기 평택시)씨는 “2002년 자생적인 응원 문화와 달리 이번에는 기업이나 방송사별로 모두 갈라진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상업화의 ‘늪’=이 때문에 세계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거리 월드컵조차 축제냐, 상업 이벤트냐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권경우 문화사회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국가와 자본 언론, 기업이 응원문화를 온통 차지하고 사람들은 그들이 마련해놓은 욕망의 분출구에 편입되는 것”이라며 “(그것이) 풀 곳 없이 쌓이기만 하는, 그래서 기회만 되면 어딘가에 편입되려는, 스트레스 받는 현대인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반면 류정아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문화정책팀장은 “우리나라에는 축제다운 축제가 없었다”며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 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으로, 단순히 상업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일상으로=16강 진출이 실패하면서 공허감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심 판정을 문제삼으며 500만명이 피파에 서명하면 스위스와 재대결할 수 있다는 ‘괴문자메시지’가 휴대폰으로 돌며 피파의 홈페이지를 마비시켰다. 스위스전 뒤 김아무개(44)씨는 “스위스 대사관을 폭파하겠다”며 협박 전화를 걸어 입건되기도 했다. 또 이날 우아무개(17)군 등은 한국팀이 져서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김아무개(41)씨한테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진정한 축제라면 뒤탈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권경우 실장은 “16강 좌절에서 오는 허탈감이나 공허감은 아직도 월드컵이 일상의 축제가 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며 “개개인이 일상 속에서 즐기는 문화가 더욱 풍부해진다면 미래의 월드컵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인택 조기원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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