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지기 옌스 레만이 8강전 승부차기에서 아르헨티나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슛을 막아내고 있다. 베를린/AP 연합
독일 골키퍼 양말에서 쪽지
상대 키커 성향 치밀한 분석
상대 키커 성향 치밀한 분석
‘운’도 준비한 사람에게 따르는 법이다. 치밀한 준비와 성실한 노력만이 피말리는 승부에서 한발짝 앞설 수 있는 힘이라는 걸 독일월드컵의 승부차기가 새삼 보여줬다. 지난 1일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8강전 승부차기. 독일의 문지기 옌스 레만은 킥을 하는 상대 선수가 바뀔 때마다 양말 속에 숨겨둔 쪽지를 훔쳐봤다. 그러곤 상대 선수 4명의 킥 방향을 모두 정확하게 예측했고, 이 중 2개를 막아냈다. 레만의 눈부신 선방에 힘입어 독일은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했다. 경기 뒤 올리버 비어호프 독일 코치가 쪽지의 비밀을 털어놨다. 그는 “레만이 아르헨티나전에 앞서 최근 2년 동안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페널티킥을 비디오로 분석했다”며 “승부차기 직전 골키퍼 코치가 분석한 쪽지를 가지고 갔다”고 밝혔다. 독일축구협회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포함한 1만3000개 이상의 페널티킥 자료가 있었다. 쪽지엔 이를 분석한 안드레아스 쾨프케 독일 골키퍼 코치의 비법이 담겨 있었던 것. “로베르토 아얄라-왼쪽 낮게”로 적혀진 쪽지에 따라 레만은 아르헨티나의 두번째 키커 아얄라가 슛을 하는 순간 왼쪽으로 몸을 날렸고, 공은 신기하게도 레만의 품에 안겼다. 레만은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키커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왼쪽 구석으로 가는 킥도 막아냈다. ‘기다리다, 왼쪽 코너로’라고 적힌 쪽지의 ‘지시’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4년 전 한-일 월드컵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 역시 승부차기를 앞두고 한국의 문지기 이운재(수원 삼성)는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서 메모를 한장 건네받았다. 거기엔 승부차기에 나서는 스페인 선수들의 페널티킥 패턴이 간단하게 정리돼 있었다. “2번 키커는 왼쪽, 3번 키커는 오른쪽….” 메모를 따르지 않고 감에 의지했던 이운재는 기적처럼 마지막 선수 호아킨(레알 베티스)의 슛을 막아낸 뒤 “사실 메모지에 적힌 방향과 선수들의 킥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의 정보수집과 예측력에 혀를 내둘렀음은 물론이다. 흔히들 승부차기를 ‘11m 러시안룰렛’이라고 말한다. 행운이 따라줘야 이길 수 있다는 뜻. 하지만 모든 승리에는 승리할 만한 이유가 있고, 행운의 여신도 노력하는 자의 손을 들어준다. 가장 단순한 스포츠, 축구가 가장 단순한 진리를 입증해 보이고 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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