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비에스〉(SBS)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인 〈골때리는 그녀들〉이 조작 파문 속에 방송을 재개했다. 5일 방영된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직전보다는 조금 떨어졌다. 제작진은 새로운 연출진과 함께 경기장 중앙에 전광판을 배치하는 등의 개선 조처를 하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정상화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방송 소재로써 스포츠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도 보여 주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누구에게도 친근한 스포츠 스타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싶어한다. 야구, 축구, 농구 등 인기 스포츠뿐만 아니라 비인기 종목의 스타 출신도 다양하게 방송 활동을 하는 추세다. 일부 스타급에 제한돼 있지만, 은퇴 이후의 삶을 개척한다는 측면도 있다.
〈골때리는 그녀들〉에 참여하는 축구 지도자는 2002 한일월드컵 스타들이다. 이들에게 프로그램 출연은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본격 출범하기 전에 만났던 두 명한테서 받은 느낌은 달랐다. 이들은 “〈골때리는 그녀들〉이 출발한다. 여자축구가 활성화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등 기대감을 드러냈다. 프로그램에 참여해 그동안 팬들한테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도 묻어났다.
여자축구의 활성화는 한국 축구의 과제다. 여자축구의 세계 무대 경쟁력 등 발전 잠재력은 남자축구보다 크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엘리트나 풀뿌리 스포츠 차원에서 여자축구는 후퇴기를 겪어 왔다. 이런 까닭에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말 〈골때리는 그녀들〉 제작진에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타들도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변했다. 무릎이 깨지고, 손가락이 부러지고, 긁히고, 찢겨도 뛰는 선수들을 보면서 혼연일체가 됐다. 물론 편집을 통해 좋은 플레이를 보여 주고,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작 사건이 드러나면서 이들의 열정은 배반당했다.
〈골때리는 그녀들〉 제작진은 애초 경기상황 조작 사실이 드러나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박빙의 접전으로 꾸미기 위해 점수까지 바꾼 것은 방송윤리 차원에서 큰 문제다. 그런데도 “제작진의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라며 조작에 개입했다는 것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스코어 조작도 “편집 순서를 바꾼 것”이라며 딴소리를 했다. 방송 내용을 진짜인 줄 알고 본 팬과 시청자가 느끼는 감정과 동떨어진 것이다.
방송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면서도 방송의 공적 책임, 공정성, 사실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의 상업주의가 심화하면서 균형감은 상실되고 있다. 방송사가 정해 놓은 프레임이 시청률에 꽂히면 진실이 가려지게 될 확률은 높아진다. 방송의 대중 전파력은 크기 때문에 특정한 의도를 갖고 있는 메시지는 사람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준다. 제작 방향에 따라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대역을 써 ‘드라마’를 연출하는 게 한국적 현실이다.
축구인들은 〈골때리는 그녀들〉의 스코어 조작이 ‘선을 넘었다’고 본다. 출연진의 피와 땀, 열정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예능화된 스포츠는 거대 방송사 입장에서는 너무 쉬운 대상이 돼 버렸다. 스포츠 스타도 예외는 아니다.
김창금 선임기자·스포츠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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