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한국시간) 팔라벨라경기장에서 벌어진 2006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결승에서 한국의 안현수 선수(왼쪽), 이호석 선수(가운데)가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와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AP/연합)
[관전평] 안톤 오노를 꺾었다는 사실이 더 큰 기쁨으로…
19일 새벽에 벌어진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를 보기 위해서 TV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꿈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새벽 6시가 넘어서 잠이 깼습니다. 그때까지 TV는 혼자 떠들고 있었습니다. 눈을 비비면서 TV 화면을 봤는데, 마침 남자부 준결승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생방송이 아니라 녹화된 방송이었습니다.확실한 경기결과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비록 녹화중계이지만 손에 땀을 쥐면서 경기를 관전해야 했습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순간 준결승전이 끝나고 결승전이 막 시작이 되었습니다. 안현수와 이호석의 역주 장면과 간간히 아나운서의 중계 속에서 나오는 낯익은 이름 '안톤 오노'... 4년전 올림픽에서 '헐리웃 액션'이 무엇인지 우리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준 액션파 쇼트트랙 선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경기의 결과는 안현수(20·한국체대)가 금메달, 이호석(19·경희대)이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마지막 동메달은 오노에게 돌아갔습니다. 나로서는 녹화중계를 보면서 이렇게 손에 땀을 쥐면서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감동을 받은 적도 별로 없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곧이어 벌어진 여자부 1500미터 결승(물론 이것도 녹화된 방송이었습니다)도 정말 손에 땀을 쥐면서 관전했고, 대한민국의 선수들이 1, 2, 3위로 들어오는 순간 자고 있던 아내를 흔들어 깨울 정도로 흥분했습니다(잠시 후에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3위인 변천사 선수가 실격당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나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안현수 선수의 금메달에 환호한 것은 아마도 안톤 오노를 제치고 따낸 금메달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노를 이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국민들에게 기쁨을 배가시키는 촉매제가 충분히 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들은 4년전의 김동성 선수의 실격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기억입니다.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도 한국 선수가 오노를 제끼는 순간에는 경기의 중계자의 위치를 잠시 떠나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안현수와 이호석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을 몇번이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3위로 들어오는 오노 선수가 아쉬움으로 두 팔을 조금 들어올리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아나운서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아~ 오노 선수, 저것도 헐리웃 액션 아닌가요?"4년전의 쇼트트랙의 황제로 등극한 안톤 오노의 '헐리웃 액션'은 그해 월드컵의 골 세레모니의 소재로까지 등장할 정도로 국민의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한때 '오노같은 놈', '오노스럽다'라는 욕설도 유행할 정도였습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페어플레이는 승리를 떠나서 선수들에게 명예와도 같은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미국의 안톤 오노에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4년전의 '헐리웃 액션'을 통해서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쇼트트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았으며 명예스럽지 못한 승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4년전 오노의 나라 미국에서 열린 솔크레이크 시티에서는 통했던 '헐리웃 액션'이 이탈리아에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오노는 3위라는 성적을 낼 정도로 분전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예선에서 7위의 성적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서 3위의 성적을 낸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4년전의 '헐리웃 액션'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한국 사람들에게서 박수를 받고 함께 축하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4년전의 오노의 모습이 너무나 뻔뻔했습니다. 대부분 금메달의 소식을 들은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함께 선전한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는 인심좋은 민족입니다. 그러나 이번 쇼트트랙의 결승전은 그러한 상황이 연출되지 못했습니다. 모든 국민들은 오노를 제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고, 오노의 3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오노를 꺾고 금메달을 안겨준 안현수 선수, 그리고 은메달을 안겨준 이호석 선수 덕분에 온 국민이 오늘 하루는 기분 좋은 주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밤새도록 TV를 켜놓았다고 아내에게 한소리 들었지만... 나도 즐거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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