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 케이비오(KBO) 총재가 지난 10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허태정 대전시장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허구연 케이비오(KBO) 총재 취임 뒤 잇따른 현장 행보가 눈길을 끈다.
3월 말 취임 뒤 창원과 수원, 인천, 대전 구장 등을 방문했고, 구단주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의사 결정권자를 만나 야구 발전을 위한 의견을 교환했다.
허구연 총재의 이런 발걸음은 그동안 정치인, 재계, 학계 출신 총재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취임사로 밝힌 팬 서비스, 인프라스트럭처(기반시설), 국제경쟁력 강화가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허 총재는 해설위원 시절 야구장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을 위해 백방으로 뛰면서 ‘허프라’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다.
야구인 출신으로 변화의 바람을 예고하는 허 총재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케이비오와 경쟁하며 자극을 주고받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0년 전만 해도 조직의 내실, 행정 역량, 리그 활성화, 비전 등에서 케이비오에 크게 밀렸다. 하지만 2013년 권오갑 총재-한웅수 사무총장(현재 부총재) 체제가 들어서면서 상전벽해의 변화를 이뤄냈다.
관중 수, 선수연봉, 구단재정 투명화를 통해 신뢰와 재정 건전성의 기반을 조성했고, 영상·기록통계센터 구축과 전문채널확보, 중계권 해외판매 등으로 성장동력을 만들어냈다. K리그 1, 2부 전 경기 중계를 위해 <더스카이케이> 방송사도 세웠다. 구단 대표와 직원들을 위한 연중 아카데미, 업무매뉴얼 제작, 선수단 주장 회의를 통해 비전을 공유하는 등 리그 안정화 기반을 다져왔다. 마케팅 등에서 훨씬 앞서 있었던 케이비오의 사례를 많이 참고했지만, 소통과 협업을 위해 종이와 칸막이 없는 사무실로 공간을 개조하는 것을 보면 이제 케이비오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수준에 오른 것 같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총재가 10년 이상 지도력을 발휘한 것이 큰 힘이 됐다. 가령 허수 관중이 빠지면서 관중 수가 곤두박질치자 구단이 반발했지만 2개년, 3개년, 10개년 계획에 따라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이젠 잘했다는 소리가 나온다.
허 총재는 40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24번째 수장이 됐다. 이전 총재의 임기를 이어받았기에 실제 임기는 내년 말까지다. 100년 이상 된 메이저리그(MLB)의 로버트 만프레드 현 총재가 10대인 것과 비교하면 케이비오 총재는 그동안 너무 쉽게 바뀌었고, 임기도 초단명이었다. 2015년 취임한 만프레드 총재가 구단주 투표로 5년 임기를 추가해 2024년까지 지휘할 예정이고, 직전 수장이었던 버드 셀리그 총재가 23년간 리그를 이끌었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한국 프로야구는 대기업 후광을 업은 구단들의 입김이 센 편이다. 케이비오 총재는 마케팅 권리만 잘 팔면 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이런 환경에서 허 총재가 프로야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과거의 리더십만으로는 안 된다. 더욱이 최근에는 케이비오의 권위와 위상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허구연 총재가 최근 지자체를 돌면서 다시금 ‘허프라’ 기질을 발휘하는 것은 개별 구단의 이익이 아니라 리그 전체의 발전을 염두에 둔 ‘생태계’ 구축을 위한 작업의 하나로 보인다. 현장에 밀착한 허 총재의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