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열린 2022 오케이 코리아 슈퍼럭비리그에서 한국전력과 현대 글로비스의 경기. 대한럭비협회 제공
‘변화와 혁신’.
지난 3월 시작된 국내 최대의 럭비축제인 2022 오케이 코리아 슈퍼럭비리그(3월26일~5월7일)를 압축하는 두 마디 말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유료화다. 그동안 럭비 경기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경기였다. 하지만 지난 9일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열린 3라운드 경기 때부터는 입장료 1만원을 내야 볼 수 있다.
처음엔 매표소 앞에서 실랑이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3라운드 700여명, 4월23일 4라운드 600여명 등 역대 가장 많은 관중이 입장했다. 대한럭비협회 쪽은 “럭비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받고, 리스펙트를 얻기 위한 과감한 조처로 유료화를 결정했는데, 자긍심 강한 럭비인들이 동참하고 있어 고맙다”라고 말했다.
관중 입장에서도 시각의 변화가 있다. 럭비 경기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이뤄진다. 기업이나 학교뿐 아니라, 선수나 학부모 등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만든 게 럭비 경기다. 하지만 그동안 ‘공짜’로 보면서 값어치를 느낄 수 없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돈을 내고 보면서 럭비가 가치 있는 상품이라는 것을 사후적으로 깨닫게 됐다.
유료화와 동시에 협회는 여러 가지 팬 서비스를 시도했다. 과거엔 비용절감을 위해 일반부 4개팀, 대학부 4개팀이 1~2주에 경기를 몰아서 했다. 부상이 많이 나오면서 기권패도 빈발했다. 지금은 43일간 6라운드를 치르면서 선수들이 1주간 휴식할 수 있게 됐고, 최상의 몸 상태로 나온 선수들이 펄펄 날면서 경기 수준이 높아졌다.
주심에게 무선 헤드셋을 의무적으로 쓰도록 하고, 반칙을 적발한 뒤 선수들과 대화하는 생생한 목소리가 관중석에 전달되도록 한 것도 혁신이다. 럭비 규칙은 선수들도 헷갈릴 때가 있는데, 주심이 어드밴티지를 주었는지, 휘슬의 내용이 무엇인지 등등을 알 수 있도록 하면서 관중의 경기 이해도를 크게 높였다. 주심도 자신의 목소리가 공개되면서 선수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등 권위주의에서 탈피하고 있다. 올해부터 도입한 아프리카TV 생중계는 자료가 되면서, 언제든지 지난 경기를 고화질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대한럭비협회는 내년부터는 국내외 선수들을 풀로 확보해 놓고, 부상 등으로 선수 구성이 어려운 팀에게 단기적으로 배정하는 트라이아웃 제도를 도입할 생각이다. 이럴 경우 선수가 부족해 경기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지게 된다.
오랜 기간 한국럭비의 요람 구실을 해온 서울 오류동 럭비구장이 최근 건설회사에 완전히 매각되면서, 계약 이행조건에 따라 서울지역에 세워질 대체구장 확보를 위해서 승인권자인 서울시를 대상으로 협회의 행정력을 쏟고 있다.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시설이 서울에 있다면 럭비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
경영과 조직의 합리화, 투명화, 매뉴얼화를 추진하는 럭비협회의 혁신 작업에 일부 럭비인들은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급격한 변화에 따른 반발 부작용이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책임 역시 조직을 끌고 나가는 지도자에 있다. 장기적 전망 속에서 포용해가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종목을 살리는 최후의 포인트다. 다행히 선수와 학부모는 협회의 편이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