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3세 세계챔피언 홍창수,1차방어뒤 타이틀 반납
재일동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온 ‘권투영웅’ 홍창수(31) 선수가 세계 챔피언의 영광과 짐을 스스로 벗어던졌다.
홍 선수는 27일 세계복싱평의회(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1차 방어전에서 도전자인 동급 1위 호세 나바로(24·미국)를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꺾은 뒤, 타이틀 반납을 선언했다. 그는 “오늘로 더블유비시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은 졸업한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는 모르겠지만 복싱으로 기른 근성을 최대한 살려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은퇴 여부에 대해선 “두세달 쉬면서 결론을 내겠다. 현재로는 90% 은퇴 쪽”이라고 28일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27일 시합은 그의 13년 복싱 인생을 사실상 마무리하는 결정판이었다. 또한 몸과 마음이 한계치까지 내몰린 상태에서 치른 시합이었다. 2개월 사이에 15㎏의 감량은 너무도 가혹했다. 게다가 시합 2주일 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차에 받히는 바람에 오른쪽 팔과 무릎을 다쳐 진통제를 먹어야 했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연습을 거의 할 수가 없었다. 홍 선수는 시합 전에 “이번처럼 링에 오르기 힘든 적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더 힘든 것은 사그라든 투지를 되살리는 일이었다. 지난해 7월 뼈를 깎는 복수전을 통해 챔피언 벨트를 되찾은 이후 그는 여러차례 소속 도장에 은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번이 최후의 일전이라는 각오로 마음을 다잡았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시합에 임했다. 그리고는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챔피언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도쿄조선고급학교에서 권투를 시작한 재일동포 3세인 홍 선수는 학교를 마친 뒤 홀로 오사카로 가 프로의 길을 걸었다. 2000년 처음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 뒤 3년 연속 일본 프로권투 최우수선수로 뽑히는 등 재일 조선인들의 긍지를 높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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