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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 씨름? 이젠 스타크래프트도 민속놀이다

등록 2022-09-11 08:00수정 2022-09-11 16:09

제2의 전성기 맞은 24살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월페이퍼. 블리자드
스타크래프트 월페이퍼. 블리자드

“바람이 붑니다. 싸늘해지죠? 9월은 장윤철의 계절입니다!”

경기가 끝나고, 관중이 열광한다. 곳곳에서 감탄과 함성이 터져 나온다. 박상현 캐스터는 이 경기를 계절의 변화로 요약한다. 평소 다른 종족에 밀려 힘을 못 쓰던 프로토스가 가을만 되면 기적적인 경기를 펼치며 우승을 차지한다는, 이른바 ‘가을의 전설’을 암시하는 말이다. 6일 프로토스 장윤철(29)은 종족 상성에서 ‘천적’으로 꼽히는 저그만 3명이 있던 아프리카TV 스타리그(ASL) 시즌14 16강 C조를 가장 먼저 뚫고 8강에 진출했다.

장윤철이 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프릭업 스튜디오에서 열린 아프리카TV 스타리그(ASL) 시즌 14 C조 승자전 김명운과 경기에서 승리한 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아프리카TV 중계화면 갈무리
장윤철이 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프릭업 스튜디오에서 열린 아프리카TV 스타리그(ASL) 시즌 14 C조 승자전 김명운과 경기에서 승리한 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아프리카TV 중계화면 갈무리

이날 경기에서 장윤철에게 패한 저그 김명운(32)은 10년 전 또 다른 프로토스 허영무(33)에게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마지막 스타리그’로 불렸던 2012년 티빙 스타리그 4강 경기였다. 당시 김태형 온게임넷 해설위원은 최후의 공격을 가는 허영무의 병력을 두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프로토스의 유닛들”이라고 불렀다. 경기 상황도 워낙 안 좋았지만, 이제는 스타리그도 마지막이라는 안타까움이 섞인 표현이었다.

허영무와 김명운이 펼쳤던 2012년 티빙 스타리그 4강 A조 4경기. 유튜브 갈무리
허영무와 김명운이 펼쳤던 2012년 티빙 스타리그 4강 A조 4경기. 유튜브 갈무리

스타크래프트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였다. 리그오브레전드(LoL), 배틀그라운드 같은 새로운 게임이 등장했고 이들이 이(e)스포츠의 새로운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은 여전히 이스포츠 명가였지만, 그들이 후원하는 이는 ‘황제’ 임요환(42)이 아니라 ‘페이커’ 이상혁(26)이었다. ‘이젠 스타크래프트는 민속놀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스타크래프트가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는 조소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스타크래프트가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 아프리카TV가 주최하는 스타리그는 벌써 14번째 시즌을 맞았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프릭업 스튜디오에는 수많은 팬이 몰려든다. 특히 이들 연령대가 과거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던 30∼40대가 아니라 10∼20대라는 점이 눈에 띈다. 출시 24년을 맞은 게임이 여전히 피시방 점유율 10위 안에 꾸준히 올라온다.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함께 즐기는 놀이로서, 진정한 의미의 민속놀이로 자리를 잡고 있는 셈이다.

홍진호(오른쪽)와 임요환이 지난 2월22일 유튜브 홍진호TV에서 주최한 ‘콩콩절 맞이 어게인 임진록’에서 5년만에 스타크래프트 맞대결을 가졌다. 이날 동시 시청자는 약 21만명에 달했다. 홍진호TV 유튜브 갈무리
홍진호(오른쪽)와 임요환이 지난 2월22일 유튜브 홍진호TV에서 주최한 ‘콩콩절 맞이 어게인 임진록’에서 5년만에 스타크래프트 맞대결을 가졌다. 이날 동시 시청자는 약 21만명에 달했다. 홍진호TV 유튜브 갈무리

수치도 이를 증명한다. 아프리카TV 쪽 설명을 들어보면, 아프리카TV 내 스타크래프트 관련 월 누적 시청자와 일평균 시청자는 2021년 7월 대비 약 2배가량 증가했다. 스타크래프트가 이처럼 르네상스를 맞은 건 이른바 대학 콘텐츠 덕분이다. 전직 프로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트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비제이(BJ)들을 가르치고 대학끼리 맞붙는 이른바 대학대전을 치르는 과정이 젊은 팬들의 마음도 사로잡는 모양새다.

특히 이들 대회는 스타크래프트의 본래 강점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과거 스타크래프트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치열한 심리전에서 나오는 전략이 매력인 게임이었다. 하지만 프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었고, 경기 수준은 높아졌지만 재미는 다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마추어 선수들이 신선한 전략을 준비하면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특징이 되살아났다는 평가다. 실제 이들 경기는 동시 시청자가 30만명을 넘길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학대전을 보기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프릭업 스튜디오를 찾은 팬들. 아프리카TV
대학대전을 보기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프릭업 스튜디오를 찾은 팬들. 아프리카TV

물론 스타크래프트를 엄밀한 의미에서 민속놀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어려운 부분이 있다. 보통 민속학에서는 3세대(60년)에 걸쳐 민중 다수가 즐기는 놀이를 민속놀이로 분류한다. 다만 그 기준이 엄격하진 않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을 보면, 김광언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우리의 어린이와 어른이 예부터 즐겨 오던 놀이”로 민속놀이를 규정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제는 명절에 어린이와 어른이 모여 함께 피시방에 가는 일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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